장로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의사로써 한평생 헌신하시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신앙 이야기를 해주세요.


직업이 의사이든 기타 다른 전문인이든, 혹은 회사원이든 사업가이든지간에 크리스천이라면 본분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친이 목사님이셔서 소위 말하는 모태 신앙인입니다. 수많은 인생의 굴곡진 여정 속에서, 습관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장기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개업전선에 뛰어든 직후였습니다.


80년대 시골목회자의 넉넉지 않은 살림에 의과대학 학비는 꽤 큰 부담이어서 저는 군위탁장학생을 지원하여 장학금 수혜기간 더하기 의무복무기간 더하기 수련기간을 합하여 11년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는 성가대, 청년회, 주일학교 교사 등으로 비교적 성실하게 생활했었는데, 11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나니까 지나간 군의관 시절은 마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어깨의 알량한 계급장과 면허증 때문이었는지 자세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모습의 시간들을 살았습니다. 눈물로 회개하며 몇날 며칠인지 모를 긴 시간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지나간 시간의 저를 돌아보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품을 느끼게 되면서 결단하였습니다. 다시는 세상을 즐기지 않고, 주의 백성들과 함께 찬양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곳에서 거하겠노라고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혼자 했던 서약을 기억하시고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전문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저는 찬양대원이라는 점 하나 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크리스천의 본분인 복음전도라는 사명을 어떻게 하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아내의 권유로 예수전도단에서 하던 독수리제자훈련에 지원하였었는데, 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면접위원분들께서 제가 훈련을 결심하면서도 가진 것들을 다 놓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낀 때문일 것 같았습니다. 안수집사 임직을 받고 나서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수료하고, 전도폭발 훈련을 거푸 일곱 번 받았는데, 전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전도폭발 훈련 때문입니다. 사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수십년의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당당하고 자신있게 “예수 믿으세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는 말을 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전도폭발 훈련을 받기 전까지는요.


전도폭발 훈련은 병원 운영에도 꽤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업마인드에 눈을 뜬 계기도 된 것입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전에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던 분과 대화하면서, 내가 의도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짜여진 순서에 입각한 대화를 주도해 나가는 방식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세일즈를 위한 영업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저는 수술을 하는 개업 외과의사이기 때문에 제게 온 환자 분이 기왕에 수술을 할 거라면 제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 의술을 떠나 영업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거든요.


진료실에서는 사실 복음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밖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분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데, 환자가 가지고 온 신체문제 이야기만 해도 시간에 쫓기는 상태라 가외로 시간 쓰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수술실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참고로 제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시행하는 수술은 거의 환자와 대화가 가능한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환자는 정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의사의 통제 아래 놓여 있고, 또 그래서 다분히 의존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제가 이끌어가는 대화, 이를테면 복음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의 환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애항하지외과를 운영하는 16년 동안 복음이라는 주제에 단호하게 거부를 했던 환자는 몇 명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가 “찬송가를 틀어놓고 수술해도 될까요?”라고 하면 별 말은 없었습니다.


찬양은 대화를 열어가기에 좋은 주제입니다. 전도폭발 훈련 때 복음제시를 시작하기 위한 모티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저의 경우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실제로는 흘러나오게 미리 계획하였지만) 찬양이 모티브인 셈입니다. 요즘은 거의 극동방송을 들으면서 수술을 하는데, 소망의 기도시간에 들려주시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는 큰 공감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저는 한 때 음악감상을 취미로 하였고, 그 때 모은 LP, CD 등이 꽤 됩니다. 오디오도 꽤 투자를 했었는데요, 찬양만 즐거워하겠노라고 결심할 무렵 오디오 기기는 다 처분해 버렸고, 장에 들어 있는 LP, CD들은 수 십년동안 먼지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 음악이 내 영혼을 어지럽히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서 다시 오디오를 장만해 볼까 하고는 있습니다만, 찬양은 항상 제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8년 전에 제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삶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 무렵 저는 교회에서 주일예배 찬양 인도자와 주일 새벽찬양대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근경색 후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어서 기쁨으로 섬겨오던 찬양인도와 지휘를 내려놓고는 이제 회중 앞에서 찬양으로 섬기기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잘 회복되었고, 교회에서는 더 훌륭한 분들이 찬양인도를 하고 있고, 저는 극동방송에서 다시 찬양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저의 서약을 끝까지 이루어 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찬양은 항상 제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찬양을 좋아하시게 된 동기와 수술 하실 때 찬양을 틀고 수술을 하시는데 종교가 다른 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고 그 효과는 무엇인지요?


의과대학 다닐 때, 80년대 초 무렵이었으니까 그 때는 병영집체교육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군부대 안에 들어가서 5박 6일 정도 군사훈련을 받았었습니다. 첫날 군가를 익히는 시간이었는데 조교가 악보 볼 줄 아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는데 훈련생 백여 명 중에 저 혼자 손을 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군가를 훈련생들에게 지도하게 된 것이 제 지휘 경력의 시작입니다. 아마도 대학생 때 개척교회의 성가대 지휘를 하게 된 것과 안수집사로 새벽찬양대 지휘를 하게 된 것, 극동방송 목요조찬예배 찬양인도자의 출발점이지 싶습니다.


저는 음악을 참 좋아하지만,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제대로 잘 하는 운동이 없어서 체육과목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더군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어도 음악은 직접 연주하는 참 좋아하였습니다. 할 줄 몰라도 들을 줄 알면 되니 음악은 참 편리하였습니다. 음악은 직접 연주하는 것보다 감상하는 것이 훨씬 폭이 넓은 듯합니다. 다양한 장르를 감상하다보니 제 경우는 점점 클래식으로 수렴되고, 클래식은 결국 찬양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분야이더군요. 클래식에 심취해 갈 무렵 인생의 방향도 신앙 중심으로 수렴되면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의 분야도 찬양으로 수렴되게 되었습니다. 찬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 가장 즐거운 수단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고, 그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이지요. 찬양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아름다운 수단인 것입니다. 악기이든 우리 사람의 목소리이든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심이라 하였습니다. 크리스천의 여부를 떠나서 찬양은 사람의 심령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그의 눈을 붙드는 많은 것들이 찬양에 주의하지 못하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수술실에 누운 환자 분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고 바쁘게 만들었던 많은 환경들로부터 격리되어 정신 심리적으로 외로운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때 들려오는 찬양은 더욱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 불교, 무교를 불문하고 찬양을 듣는 분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참 좋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입니다. 심지어 유명한 절의 주지스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찬양은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높이는 음악이니 인간의 창조 본질을 깨우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수술실에서 찬양을 들으며 이렇게 대화를 열어갑니다. “혹시 교회에 다니세요?” 그에 대한 답으로 크리스천 여부를 알아볼 수 있지요. 크리스천이라면 다음의 대화는 너무 자연스럽지요. 크리스천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다니라고 강요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구요, 혹시 이런 음악을 들어도 되는지 여쭤 보려고 한 겁니다. 저는 수술할 때 항상 찬송가를 들으면서 수술합니다.”
그러면 백에 구십구는, “참 좋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음악에 관하여, 찬양사역자들의 삶에 관하여 등등 몇 마디 더 한 후 결론을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세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앞에 언급한 유명한 절의 주지스님은 저한테 이러시더군요. “원장님이 장로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스님께서 왜 하필이면 장로한테 수술 받으러 오셨습니까?” 했더니, “장로님이시라니 믿어도 될 것 같아서 왔지요.”라고 하시더군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지요.

이 글을 쓰면서 저와 대화를 나눈 여러 환자 분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데요, 찬양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참 많이 뵈었습니다. 중년의 어느 신사 분은 꺼이꺼이 울면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교회에 다녔노라고, 애항하지외과에서 수술 받게 된 것이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는 신호인 것 같다며 다시 교회에 나가겠노라고 하셨구요. 말없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던 어느 여성 분, 수술 마칠 때 보니까 눈가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남자 분, 코를 훌쩍거린 젊은 여자 분 등등 찬양의 힘 아니겠습니까?

수술실에서 찬양 들으며 전도 받고 우리교회에 등록하여 안수집사까지 된 분이 있는데, 곧 장로가 되실거라 생각됩니다. 어떤 나이 드신 여자 분은 동생이 목사님 사모님이신데, 의가 나서 교회와 멀어져 평생을 지내셨답니다. 그런데 수술실에서 들은 찬양으로 마음이 녹아 복음제시 받고 다시 신앙생활 하시고, 동생 사모님과도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제가 찬양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극동방송 청장년 위원장으로 섬기시는데 극동방송과의 만남의 축복을 이야기 해주세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대학생활 때도 기독학생회, CMF(Christian Medical Fellowship) 등의 활동을 했는데, 성인이 되고 난 후 교회 밖의 신앙 활동은 극동방송 운영위원회가 처음입니다. 기드온 사역도 하고는 있지만, 극동방송과의 만남은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실천신앙에 눈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찬송, 예배는 교회에 가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제게 극동방송, 특히 김장환 목사님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과의 교류였습니다.


극동방송 운영위원의 사명은 복음전파를 담당하는 극동방송을 기도와 물질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토 아래 교회에서 배우고 익히고 수련한 바가 기초가 되었고, 극동방송 운영위원으로 섬기는 가운데 섬김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고, 이로써 하나님 나라가 든든히 세워져가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교리적 원리가 실천적 현실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눈으로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전해져 오는 수많은 복음의 역사들, 감동적인 사연들, 눈물 흘리게 되는 헌신들을 보며 조금이라도 따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는 제 능력 이상의 축복으로 제게 돌아왔습니다.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하여 좋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코로나를 비롯하여 좋지 않은 많은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 지경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봅니다. 심근경색으로 좋지 않았던 제 건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아졌음도 느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제 마음이, 믿음이 예전에 비하여 확고부동함을 믿고 주저 없이 고백합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극동방송 사역을 통하여 부어 주신 은혜입니다.

앞으로의 장로님의 복음과 의료사역의 비젼과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장로 임직시험 때 노회의 면접위원들께서 “장로가 되면 교회를 위하여 무슨 사역을 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물어 보셨습니다.
저는 함께 면접을 치루는 분들 중에 유일하게 이렇게 대답하였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건축을 위해 헌신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제가 출석하는 등촌교회가 본당 재건축을 완공하고 입당하였습니다. 죄송하고 안타깝게도 저는 건축실행위원에 들지 못하였습니다. 타의반 자의반이었는데, 나중에 성전 건축을 꿈꾸었던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연관지어지며 성전 건축은 제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은 위대합니다. 제가 어떻게 꿈꾸고 실행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제게 극동방송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극동방송 운영위원으로 열심히 섬기며 복음을 위한 한 개의 나사못, 한 개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습니다. 의료사역이라기 보다는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가지며,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사업을 운영하며 가지고 있는 꿈이 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것인데, 해외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돕는 방법 중의 하나로 안식년을 맞거나 은퇴하신 선교사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지금 운영하는 병원의 병실을 게스트룸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여건이 허락된다면 선교사님들을 위한 제대로 된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것이 소박한 제 비젼입니다.
기도제목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장로님께서 좋아하시는 성경구절과 어렵고 힘든시기를 보내고 있는 재미교포 크리스천들에게 격려와 조언의 메세지 부탁드립니다.


이 구절을 좋아합니다. 복 받고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겠지요? 민수기 6장 24절-27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 카톡 프로필에 인용하고 있는 성구를 여기에 인용해봅니다. “If I have found in Your eyes …”
2년쯤 전에 하형록 목사님께서 쓰신 “FAVOR”라는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후 카톡 프로필 문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형록 목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세 가지가 있는데, Grace, Mercy, 그리고 Favor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Grace는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 즉 “구원”을 얻는 것. 히브리어로는 “헤세드”라고 하는데 언약에 기초한 은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Mercy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될 것을 받지 않는 것,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대신 받으셔서 우리가 받아야 될 벌을 받지 않게 된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라훔”이라고 하는데, 긍휼히 여기심입니다.

Favor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때”에만 우리에게 오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헨”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의미하며, “헨”이 나올 때는 “헨 베에이네”처럼 “주님이 보시기에”라는 뜻의 “베에이네”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깨닫게 된 사실은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즉 복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 즉 Favor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려운 때를 만난 것처럼 보이는 때가 사실은 가장 복 받는 기회가 됨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때를 잘 이겨 나가는 방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 복을 꼭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리 엄상윤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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