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셉 목사 3분 설교 메세지

❋ 추수 감사 예배 설교(2020. 11. 22)(요약문) ❋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일상 감사, 감사 일상"


(시편 118편 28-29절)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많은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팬데믹이 우리 생활에서 끼친 가장 값진 교훈의 하나는 항상 당연하게만 여기던 일상, 평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던 일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일상 감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일상의 감사가 생기면 감사가 일상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곧, 날마다 감사하는 삶은 가능한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일상을 감사하게 해 주었는데, 팬데믹이 마무리되어도 일상의 감사, 감사의 일상은 지속될 수 있을까?
- 제가 팬데믹 상황에 걸맞은 표어 하나를 만들어 보았다. '가둬 두면 감사, 가만 두면 불평' 가두어 두면 감사하지만, 가만 두면 불평한다. 팬데믹 상황처럼 못하게 가둬 두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감사보다는 불평이 더 생긴다.
- 성경에 아재 개그 표어 같이 '가만 두면 불평, 가둬 두면 감사'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요나다. 요나는 가만히 두면 그냥 불평이 나오지만, 가두어 둘 때는 감사하는 사람이다.
- 요나서 3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 경험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그 역사에 함께했던 요나는 4장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욘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 개역개정에서 '매우 싫어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Yara(야라)는 '떨다, 흔들리다, 몹시 걱정하다, 근심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몸을 떨며 몹시 걱정하거나 분노하는 것을 말한다. 곧 Yara는 몹시 짜증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감사보다는 불평, 불만, 그리고 짜증이 우리의 본질적 반응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나서 4장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1. 불평의 근원

- 우리는 왜 불평할까? 무엇을 불평하는가? 언제 불평하나? 누구에게 불평하는가? 어떻게 불평하나?
- 영적인 X-레이를 찍어 해부하여 불평이 나오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 그 근원을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불평이 솟아오르는 세 웅덩이, 세 샘 줄기를 보려고 한다.

⑴ 자신 과신
- 불평의 첫 번째 근원은 '자신 과신'이다.
-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2-3절), 2장의 '회개' 기도가 '자신 과신' 기도, Yara하는 기도로 바뀌었다.
-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2절a)
-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2절b)
-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3절)
- 요나가 불평하는 근원은 '자신(자기) 과신'이었다. 자기 안에 자기만 보이는 것이다.
- 쌍망원경을 반대로 돌려서 보면 자신은 크게 보이고 다른 실물은 작게 보이듯이, 요나에게는 자기중심적 시야와 사고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 우리가 자신의 감정, 필요, 기대, 욕망에 집착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은 물론 하나님에게조차 안하무인이 된다. 불평은 하나님조차 자신에게 양이 차지 않다는 생각, 한마디로 하나님도 틀렸다고 평가하는 내 마음의 뿌리에서 불평과 불만의 화산은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자신(자기) 과신'은 불평의 중심이다. 자기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될 때 불평하게 되어 있다. 우리 안에 자기 자신, 자기 문제가 가장 크게 보일 때, 우리에게 감사는 도망가고 불평은 끓어오른다.

⑵ 기대 기댐
- 불평의 두 번째 근원은 '기대 기댐'이다.
-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2절a)
-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5절b)
- 요나는 니느웨 성읍에서 빠져 나와 동쪽으로 가서 초막을 짓고 거기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니느웨가 어찌 되는가 '기대'하고 있었다.
- 요나는 자기 자신이 생성한 기대치를 하나님께도 적용하여 자신의 불만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워서 결국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해 주실 거야.' 그렇게 하나님을 잘 알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평가 기준과 기대치를 맹신했다.
- 기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기 보호 장치다. 삶 속의 많은 아픔을 내 마음대로 스스로 제어하고 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기대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대에 기대지 않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내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기대길 원하신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사람은 기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생긴다.

⑶ 편함 편향
- 불평의 세 번째 근원은 '편함 편향'이다.
-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6절a)
- 초막이 시들자 하나님이 박넝쿨로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심으로 더위를 피하게 해 주신다.
-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6절b)
- 니느웨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로 인해 불평하고 불만이 넘쳤던 요나에게 유일한 기쁨은 자신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는 박넝쿨 하나였다. 그에겐 12만 명이 넘는 니느웨 도성의 영혼보다 자신의 '편함'만이 최고의 가치였고 기쁨이었다.
- 우리도 요나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왜 그렇게 매정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을까? 더 편한 자동차를 타고, 모든 편리함의 극치를 누릴 수 있는 새 아파트를 선호하고, 더 빠르고 기능 많은 기기에 꽂혀 행복함을 거기에서 찾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불평과 불만의 증폭이었다.
- 하나님이 벌레 한 마리를 보내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신다(7절).
- 박넝쿨 그늘에서 자기 '편함 편향'에 젖어 있던 요나는 박넝쿨이 시들어 버리자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겠다고 한다(8절).
- 불편함에 꽂히면 불평함만 꽃핀다.
- 하나님은 요나서 4장에서 두 번이나 짧은 한 문장으로 반문을 던지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절),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9절)
-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너희가 Yara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나님이 내 영혼에도 물으신다. "네 마음, 네 감정, 네 생각을 주관하는 이 태도가 과연 옳은 거니?"
- 우리 안에 있는 '자신 과신, 기대 기댐, 편함 편향'이 우리의 불평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고 있다.


2. 일상 감사의 회복(Yara에서 Yada로)

- 시편 118편은 요나서 4장의 대칭되는 성경이다.
(시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감사하다'는 히브리 단어는 '야다(Yadah)'인데, '던지다, 내던지다(throw, cast)'는 뜻이 있다. 좋은 것을 던져 줄 수도 있고, 나쁘거나 불필요한 것을 던져 버릴 수도 있다.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던질 수 있다. 아니면 '자신 과신', '기대 기댐', 그리고 '편함 편향'을 던지는 것이다. 이처럼 감사와 고백이 같이 있는 것이 야다(Yadah)인 것이다.
- 우리가 일상 감사를 회복하는 것은 야라(Yara, 불평)를 야다(Yadah, 감사)로 바꾸는 것이다.

⑴ 기대를 기도로
(시 118:8-9)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다시스로 향하고, '기대 기댐'에 젖어 니느웨의 동쪽에서 여호와의 마음에 등 돌려 박넝쿨에 기대는 요나가 되지 말자. 여호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감사가 회복됨을 기억하자. 내 기대를 내 기도로 변화시킬 때 우리는 불평을 감사로 바꿀 수 있다.

⑵ 편리함을 거룩함으로
(시 118:18-19)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 '편함 편향'에 집착한 요나는 자신의 편리함을 최고 가치로 여겼지만, 우리는 모든 불편함을 하나님이 의롭게 해 주시는 손길인 것을 신뢰하자. 엄연히 주님께서 주시기도 하고 가져가시기도 하지만, 정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그분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우리가 당하는 일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관계를 불평하고 버릴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을 때 거룩하여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⑶ 자신을 당신으로
(시 118:28-29)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자신 과신'에 차 있던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향하는 배로 또 박넝쿨 밑으로 갔지만, 우리는 여호와를 피하지 말고 여호와께 피하자. 여호와를 기대고 기대하자.
- 인간적인 기대 심리에 기댔던 요나와는 달리 일상 가운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삶을 통해 불가능한 일상 감사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수용하고 순복하면서 감사가 일상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 우리의 눈이 자신에게 또 우리 욕구를 충족할 여러 곳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이 오직 하나님께 향하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만 우리의 불가능한 일상 감사, 감사 일상이 기적처럼 우리 안에 발견되게 되는 것이다.
- 감사가 범사가 되는 것, 감사가 일상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기적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기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보좌 위에 올라앉은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내 기대가 나를 축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 편함이 나를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의 변화는 하나밖에 없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그 기적의 변화는 시편 기자가 "You are my God"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한 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하실 수 없다.
- 팬데믹이 끝나면 일상 감사도 끝난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면 우리의 감사는 일상이 될 것이다.


▸설교요약/정리: 안재환 (원천침례교회 집사, 흥사단 부이사장)
▸영문자막 번역/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두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문서기)
Eli Lee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Deloitte 리스크자문본부)
▸영상편집: 강한빛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상편집팀장, 오롯영상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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