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많은 선교지 중에서 어떻게 이스라엘로 가시게 되었는지 말씀 해주세요.

제가 택했다기 보다 하나님 말씀에 너무나 갈급했었고, 성경을 공부해야되겠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주석을 보아도 서로 다른 해석이 너무나 많은 겁니다. 그러다가 주석이 없이 오리지널 언어로 공부를 해보자, 내가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으로 원어를 공부하기 위해 남침례교단 소속 Criswell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4개의 강의를 듣던 날, 3교시인 Israel Theology 시간에 15년간 남침례교단에서 유대인 선교사역을 마치고 오신 교수님(Dr. Jim Sibley)의 수업 첫 마디가 “당신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겁니다. 동시에 저에게 든 생각은 “내가 왜 이스라엘에 대해서 알아야 돼?”라는 것이었어요. 성경을 공부하러 왔지, 이스라엘을 꼭 알아야 돼? 이런 생각이었는데 학생들이 모두 잠잠하더라구요. 그런데 교수님이 다시 “만일 여러분이 성경 속의 이스라엘을 모른다면 성경 전체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겁니다. 순간 '아, 저것이 내 문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경에서 내가 이스라엘을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한다면 성경 전체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뒷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성경의 이스라엘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것이 연결되어 선교학 M.Div를 공부하러 갔던 제가 Jewish Studies로 전공을 바꾸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Jewish Studies의 M.Div가 거의 없어요. 무디바이블 칼리지와 저희 밖에 없거든요. 암튼 그 이후로 제가 성경을 보는 눈이 바뀌고, 성경이 쉬워지면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5년을 공부하다가 2010년 공부의 연장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연구하고, 나아가 사랑하게 된 동기이죠.

저의 사역은 이스라엘을 선교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들어가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스라엘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예요. 3개월 비자만을 주는데 공부를 하게 되면 1년짜리 학생 비자가 나오고, 자원봉사자로 일할 경우에는 2년을 주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 들어가면 군인이 되는 기분이예요. 사역이든 공부든 올인하다가 3개월이 되어 떠날 때 휴가를 받은 느낌이 들거든요.
2010년, 저희 신학교와 리버티 신학교가 공동으로 이스라엘의 고고학 팀이 일하고 있는 유물발굴작업에 조인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집중교육의 연장선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금을 체에 거르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조각 하나 하나를 걸러내는 작업을 했어요. 수 십년 동안 지속되어온 발굴작업인데 솔로몬 시대의 동전도 나오고, 때로는 비쟌틴 시대의 유물도 나오곤 합니다. 히브리대학이나 바일란대학(Bar Ilan University)의 교수들이 같이 일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니까 여름에는 집중교육 과정에 학생들의 손을 빌리고 있지요. 3주동안 남들은 코인을 단 한 개만 찾아도 횡재했다고 보고 하는데 저는 10개를 찾아내 팀에서 '코인 퀸'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흙을 파고, 만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당시에 저는 카메라도 고장나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고, 여유돈은 물론 없었구요. 유일한 동양인으로 눈에 안보이는 차별도 있어서 좀 의기소침하기도 했었어요.
어느 날, 발굴터에서 예루살렘 성전쪽을 바라보면서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러시는 것 같았어요.

“얘야, 너는 네 마음 속에 담아가라. 이런 경치말고, 사람들을 담아가라”고... 눈물이 주욱 흐르대요.
이상한 것은 거기 있는 동안 제 눈에는 사람들, 특히 그곳의 여자들과 아이들만 보이는 겁니다. 히잡을 뒤집어쓴 어두컴컴한 여인들, 또 유대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 아마도 제가 여성사역을 했었기 때문에 그들만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애들은 사진 찍고, 기념품사느라 샤핑하기 바빴는데 저는 수시로 메모를 했습니다. 나중에 레포트를 쓰려면 어차피 필요하기도 했구요. 몇 시에 어디를 갔었고,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나중에는 그 메모지 좀 달라고 다들 아우성이었어요. 그 때 메모지를 나중에 보니 제가 '하나님, 저를 이 땅으로 속히 보내주셔서 저 어린 영혼들과 여인들을 위해서 돕는 자로, 섬기는 자로 있게 하소서'라고 썼더라구요.
신학교로 돌아와 M.Div를 마쳤는데 5월 6일 졸업하고, 다음날인 7일에 이스라엘로 날아갔습니다.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날아갔지요.(웃음)

이스라엘에서의 생활은 어떠셨어요?


정보도 없었고, 조사도 안해보고 무조건 갔습니다. 거기서 살다온 교수들도 많았는데 아무도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어요.(웃음) 차도 다 주고, 갔는데…. 앞서 말했듯이 그 나라는 3개월 비자만을 발급하ㄴ느데 그것도 모르고 떠날 때는 다른 선교지처럼 그냥 살 수 있는 나라인줄 알았어요.
살아보니 세상적인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이 너무 잘 들어갑니다. 저에겐 이들이 복음의 대상이기도 하구요. 종교와 정치가 일치되는 나라가 이스라엘인데 그들의 헌법에는 선교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유대교를 다른 종교로 바꿀 수 없는 것이죠. 크리스찬의 핍박이 가장 없는 곳이 이스라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종교를 바꾸도록 전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 사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저 눈만 뜨게 해주면 됩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10여 년을 보냈네요. 믿지 않는 유대인들 가정들을 돌면서 도우미로서, 때로는 베이비시터로 그 가정에 들어가 같이 살면서 전도의 기회를 삼습니다. 지금은 Bar Ilan 대학에서 성서 연구학 Ph. D 연구과정에 있다가 들어온 상태입니다. 미국에 들어오는 시점에 펜데믹과 맞물려 항공권이 모두 취소돼 붙들려 있는 상황이 되었죠.

앞으로 선교사님이 가진 비젼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하고 있는 사역은 '부림 앤드 샬롬 하우스(Prrim and Shalom House)'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사역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이곳에서 예수님의 평안이 임하는 곳으로서 가르침과 치유 등이 이뤄지게 하는 사역이 제가 가는 곳곳마다 계속될 것입니다. 유대인 여성들을 비롯해서 모든 이방 여인들, 아이들을 위한 사역이 되겠지요.

이스라엘 정 에스더 선교사 TEL. 214-434-2900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한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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