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장님께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셨고 미국유학을 가게 되셨는지 신앙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세요.


1950년 6·25사변은 저에게 큰 변화를 갖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일요일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여유롭게 쉬던 즐거운 여름날이였고, 휘문 고등학교 동창이 놀러 왔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인 장기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침묵이 깨지고 멀리서 대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폭음은 서울시의 북쪽 가장자리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흘만에 북한군이 서울 전역으로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북의 침략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고, 이후 3개월 동안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 탈출하려던 차량들은, 북한군의 남침을 막기 위해 한강의 다리가 철거된 사실을 모르고 운전하다가 한강으로 추락을 했습니다.

3개월 후, 맥아더 장군의 전략적인 작전으로 우리 영토의 대부분을 되찾았고, 사회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회복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기가 무섭게, 북한군에 대규모 중공군이 합류해 다시 남한을 침공했습니다.

공산주의 영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와 제 누님, 그리고 누님의 세자녀 (3세, 5세, 생후 6개월)는 피난민 캐러밴(caravan)에 합류해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누님의 시댁 어른들의 고향인 용인의 외딴 마을이었습니다. 소를 모는 수레와 개인 소지품, 가구, 세 아이를 태운 캐러밴은 정말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뒤에서 중공군은 쳐들어오는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얼마 뒤쳐지지 않은 중공군의 추격을 알고 긴장하고 긴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이틀 만에 우리를 따라잡았고, 중공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소문은 마을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지만, 그 후 밤이 지나면서, 그들이 순식간에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위태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튼날 치명적인 공습으로 누님이 생을 마치는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오, 맙소사… 오, 세상에”라는 말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몹시 추운 날이었고, 땅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저는 누님을 임시로 얕은 무덤에 겨우 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피할 수 없는 질문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 특히 막내가 겨우 6개월 된 조카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막내 아기를 두꺼운 담요에 싸서 등에 업고 지도도 없이 미지의 지역을 방황했습니다. 종종 아기는 배가 고파 필사적으로 울었지만, 저는 아기에게 우유를 먹일 수 없었습니다. 아기가 젖을 달라고 외치는 것을 듣는 것은 배고픔 보다 더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에, 해가 눈 덮인 산 뒤로 지고 곧 어둠이 엄습해 왔습니다. 나는 멀리서 들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고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나무 밑에 누웠을 때, 수없이 많은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내가 누구지?” “왜 나 혼자 여기 있지?” “아무도 신경 안 써?”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지?”

전에 저의 고등학교 동창생 하나가 교회에서 “킹 오브 킹스” 라는 영화를 상영한다고 교회를 가자고 초대한 적이 있었고, 저는 친구와 함께 교회로 몇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교회당이란 곳을 가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 친구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자주 친구들로부터 조롱을 당했기 때문에 저는 그저 호의로 초대를 받아들였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때 교회 목사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바탕으로 한 오프닝 기도로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맞아, 거기서 그 말을 들었어.” 마태복음에 나오는 마지막 장의 마지막 구절이었기에 아마도 기억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래, 난 믿어. 믿을 수 있도록 도와줘!” 저는 그날 밤에도 계속해서 그 말을 했습니다. 기적적인 증거나 계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확신을 위해 이렇게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오늘 밤에도 이 곳에서 나와 함께 계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밤이 저에게는 벧엘에서 야곱이 주님을 만난 것 같은 바로 순간이었습니다.

14살 어린 시절, 저는 이리저리 쫓겨 다녔고, 가난, 기아, 굴욕, 자기 평가절하, 그리고 죽음에 가까운 만남 속에서 전쟁의 바람을 타고 3년 동안 떠돌아다녔습니다. 매일 저는 바닥이 없는 구덩이에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지금처럼 그 때에 성경을 알았다면, 다윗의 시편을 읊었을 것입니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얼마나 오래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까?

저는 수원 인근에 미 공군기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취업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아주 짧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취업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공군기지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꼬박 사흘이 지나서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저는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뼈 조각과 남은 찌꺼기를 뒤지기 위해 공군기지 쓰레기장을 방황해야만 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용기를 내어 어설픈 영어로 편지를 써서 공군기지 고위 장교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비록 편지가 별로 말같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저에게 그 전날 막 도착한 목사인 에두아르트 바즈다 목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목사님의 선처와 은혜로 겨우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달”(제 성이 문 씨이니 저는 늘 “달” 이었습니다) 이라고 불렀고 저는 목사님을 군목의 영어표현인 채플린의 약자인 “채피”라고 불렀습니다.

채피는 제가 거의 굶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제가 “오피스 홀”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정말로 제대로 된 점심식사였습니다. 매일매일 먹을 것을 걱정하고 굶는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말 그대로 “천국의 만찬” 이었습니다. 배고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 같은 경험을 겪은 터에, 반대로 영적인 구원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전쟁을 통하여 사람이 죽는 것을 경험한 것도 유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실감나게 삶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말이죠. 매일 저는 진정으로 구원을 감사하기 위해 저의 이기적인 욕망을 죽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진로와 방향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채피는 제가 난로가 없는 얼어붙은 텐트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공 모양으로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것을 보고 예배당에서 잠을 자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그는 저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요람과 담요, 제가 외롭지 않게 라디오, 그리고 매일 세 끼의 식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주일 차이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지난 주 까지만 해도 저는 수렁 속으로 내려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목사님을 통하여 넘치는 의식주 등 모든 것들이 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떡, 만나(manna).”

어느 날, 채피가 저에게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어보지 않을래?”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면 채피가 저에게 목사가 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즉각적인 대답은 “아니오” 정도가 아니라 강한 거절이었습니다. “절대적인 빈곤, 극심한 빈곤, 끝없는 거절” 저는 지구상의 지옥을 전쟁을 통해서 보았고, 다시는 이러한 지옥 속에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기에 당연히 저와 저의 가족을 부유하고, 강력하고, 인기 있게 만드는 직업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다면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있을까요? 라고 되물어보았습니다. 채피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 목사가 되면 너는 부자가 될 수 없어! 그런데 왜 하나님이 너를 살려 뒀다고 생각하니? 너는 내게 네가 쉽게 죽을 수 있었던 때가 많았다고 말했지. 왜 주위에서 십여 명이 죽어 가는데 하나님이 너를 살려주었다고 생각하니? 그때 저는 사람들이 하던 말이 기억이 났습니다. “총알을 피할 수 없다. 총알이 당신을 피해야만 한다.”

그 이후로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채피 목사님의 기도와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따라가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되겠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지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회개했고, 주님이 이끄시는 데로 순종하고 따라갔습니다. 저는 신학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고 채피처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에게 복음을 전도하고 돕는 일을 해야 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일찍이 도미해서 미국 켈리포니아 어바인에 위치한 컨코디아 대학을 설립하시고 교수와 부총장으로 섬기셨는데 그 당시 이야기해주세요.


전쟁이 끝나고 채피의 도움으로 1955년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루터교단의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대학, 대학원에서 신학(MDiv.)과 사회학(PhD.)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획대로 루터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한 뒤 선교 목사로 한국에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당시 루터교회-미조리 교단의 새로운 선교 사업인 한국루터교회가 내게 소명을 연장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제 모교인 컨코디아 시니어 칼리지에는 사회학 교수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로 모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루터교단의 교육부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의 은밀한 보살핌 이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목회 계획이 무산된 것처럼 보였지만, 컨코디아 시니어 칼리지의 교직 사역은 당시 '그리스도 칼리지 어바인'이라는 컨코디아 대학의 제 교육 사역을 위한 디딤돌 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뜻의 또 다른 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린도전서 15:10) 라는 성경구절이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1975년 크리스마스에 창립 총재인 찰스 맨스케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마태복음 28:19-20)에 기초하여 설립된 기독교 대학의 비전을 저와 공유했습니다. 저는 1976년 봄에 전화를 받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위치한 컨코디아 대학은 1976년 가을에 36명의 첫 학급 학생들에게 입학허가를 하고 개강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개강을 하였는데 화장실도 준비가 안되었고, 강의실 페인트도 칠해야 했고 강의 준비하랴 학교의 허드렛일을 하랴 너무나도 분주하였지만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교수로써 학생들에게 사회학 전공과 기독교 사상과 신앙을 가르쳤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6년의 기간동안 대학의 부총장으로서 학교를 섬길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공군기지 쓰레기통을 뒤지던 저를 주님께서는 큰 계획과 비전을 갖고 계셨고 저는 그분의 뜻을 성경과 기도를 통해 발견하고 순종한 결과였다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컨코디아 대학 초창기 사진

박사님의 아내 이야기와 컨코디아 대학에 설립된 “Moon International Center”를 소개해주세요.


제가 미조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위치한 컨코디아 세미네리(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당시 같은 지역 루터란 간호대학에 학생인 아내(Sharon L. Moon)를 주님의 사랑과 인도로 만나 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사회에서 목사와 교수로써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내조와 기도 덕분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2020년 1월에 설립된 “Moon International Center”는 컨코디아 대학 캠퍼스에서 국제 교육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발족되었습니다. 그 목표는 3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국제학생 유치와 관리를 위한 기금조성, 둘째, 컨코디아 대학 캠퍼스에서 국제학습환경 조성, 셋째, 자매결연 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기금조성 입니다. 더 많은 국제학생들이 충분한 장학금과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고 캠퍼스에서 국제적 감각과 도전을 주어서 학생들이 더 넓고 큰 비젼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Moon International Center

박사님의 85년 인생에서 전하고 싶은 신앙적인 메시지를 말씀해 주세요.

우리의 주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주님은 우리를 아끼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아버지가 우리의 잘못을 간과하기 때문에 몰래 나쁜 짓을 저지르는, 한 가정의 버릇없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시는 지 이해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넘치는 은혜에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날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참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도 친히 키우는데, 하물며, 그 보다 더 중히 여기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인내심을 갖고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을 이해하고 확신하게 되실 것입니다.

현재 미국이 COVID-19 으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재미교포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는 신앙의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85년의 삶을 돌이켜보면 저의 과거는 추억하고, 죄로 물든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이러한 저의 삶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저를 마치 지옥과 천국을 모두 경험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6월 25일 한국전쟁의 위험 속에서 방황하던 저는 주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죽은 몸이었습니다. 여러 번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저에게 들려온 그 말이 늘 생각납니다. “당신은 총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총알이 당신을 피해야 합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주님, 저를 위해 또 무엇을 준비해 두셨습니까?'”라고 주님께 되묻습니다.


지난 해의 모든 고난과 고통은, 왜 그렇게 두렵고 불행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침의 안개처럼 갑자기 사라질 수 있습니다. 기억의 특수성 덕분에, 우리의 뇌가 고통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저장하지 않고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불러서 그의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많은 과정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제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많은 사람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은퇴한지 오래 되어서, 저는 제가 빚진 시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저의 하루하루를 헤아리고, 남은 나날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루하루가 주님을 향한 찬양의 날이길 늘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미국이 COVID-19으로 많은 어려움과 힘든 시간입니다. 그런데요 이 어려움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이 어려움을 걷어 가시는 분도 살아계신 예수님 이십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힘든 시간을 준비하고 그 시간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왜 나 예요, 주님?” 하고 푸념하는 것은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나약함에 우리는 무릎 꿇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만이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펜데믹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특히 시기 적절한 말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총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총알이 당신을 피해야 합니다.” God Bless You and God Loves You!! 감사합니다.

문상익 박사의 자서전


The Bulletproof Missionary

Shang Ik Moon's journey from North Korea to America.
Author : Keriz Rosado

문상익 박사의 자서전 구입처

https://www.amazon.com/Bulletproof-Missionary
-journey-America-Publishing-ebook/dp/B07BKQG24M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리 Lonnie Lee (Concordia University, Irvine)
번역 호준철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부회장. 미국 퀄컴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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