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쏟아진다.

모든 시계를 정지 시킨다. 이런 문장은 선교지에서 사용되는 말일 것이다.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일지라도 그 날은 있다.
무슨 날 일까...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이다.
올해 만 60세 이제 노년기가 시작되는 것인가...? 그렇게 팔팔하고 팡팡하더니 벌써 고개를 숙이는 그 날이 다가온 것이다. 매사마다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그러나 사랑합니다...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일들도 흔히 일어나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도 하다.
선교지를 떠나온지 8년.
뒤돌아 보면 참으로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 긴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갈수록 시간이 모자란다. 점점 하는 사역이 늘고... 그 뒷받침도 해내기가 쉽지가 않다.
올해 연말연시에 자녀들이 모두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이곳에서 미국까지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 안과 사역도 힘에 부칠 정도로 많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
는 기가 막힌 중증 환자들을 두고 60세 생일을 위해 자리를 떠나기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지난번 선교 대회 참석차 한 달 비운 사이에도 현지 병원에서 수술로 인해 실명된 자들이 무수히도 저희 클리닉을 찾아와서 하소연을 했다. 참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그렇지만 교통 사고 때문에 저희들도 잠시 휴식이 필요 했었다. 하지만 그 한 달 동안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힘들고 지친 연약한 이민 교회들을 방문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다 보니 저희 또한 지쳐져 가고 있었다. 이래도 가슴 아프고 저래도 가슴 아프다.
아내는 며칠 전 늦둥이 학교 때문에 미리 이 곳을 떠나 LA로 갔다. 늦둥이가 이제 8학년이 되었다 지금은 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언니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엄마, 아빠. 나는 언니지 부모가 아니잖아 정말 힘들어. 하지만 늦둥이는 사춘기로 접어들어 걷잡을 수 없이 애를 먹인다고 한다. 언니가 고민 끝에 엄마 아빠에게 영어로 쓰면 막내가 못알아 볼까봐인지 한글로 긴긴 연설문을 적어 보냈다. 터져버릴것 같은 가슴을 안고 부랴부랴 아내는 LA로 날아갔다. 만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모두 다 평온해졌다. 엄마의 역할이 그런 것이다.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학교 갔다 올 때 기다려주고, 직장 갔다 올 때 기다려주고. 등두드려주고. 그러면서 나는 기러기 아빠가 됐다. 각오한 일이지만 참 기가 막힌다. 선교지 사역을 반이나 줄여야 할 형편에 처했다. 늦둥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엄마가 왔다 갔다 기러기가 되고. 나도 가끔씩 아빠 노릇하려고 기러기가 되어야 하겠지.
안 되겠다. 이번 연말에 60세 생일을 기다리는 자녀들에게 달려가야겠다. 바로 그 날이지. 그 날 말이야.
지금까지 유심히 살피고 키우던 토끼를 모두 어제 잡아서 통 속에 보관했다. 얼마나 많은지... 짐승들이 있으면 아무 곳도 가지 못하고 있어야 하니까... 오늘은 거위 세 마리를 이웃에게 보내어 두 마리는 고기를 갖다 주고 한 마리는 이웃이 가지라고 정리를 했다. 내일은 닭 중에도 수컷 몇 마리를 잡아 정리를 해야겠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세상 징조를 통해 알게 된다고 하셨다. 과연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는지... 선교사의 삶 속에도 떨리는 가슴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는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는 겨울이다. 어제는 난방 장치가 얼어 터져서 난방을 하지 못하고 콜록 콜록 밤을 보냈다. 오늘 기술자가 와서 바깥 난방은 절단을 하고 부서진 난방기는 수리한다고 가져갔다.
이 참에 나는 바깥 난방은 모두 철거할 예정이다. 일 년 동안 애써서 재정과 시간을 들였는데 해보니 결국 이론과 실제는 너무 차이가 많다. 이런 선교지에 들어온 난방 기구가 워낙 값싼 제품이라 뭐, 제대로 진척이 안된다. 그래 그렇구나. 선교 방향도 많이 바꾸어야 하겠다.
새로운 전환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삶 속에서 하나의 계획만 세워도 얼마나 많은 변화와 수정이 뒤 따르는데.
그 날, 말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그 날이 꼭 있지요. 만약 그 날이 지금이라면...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있을까...?
안과 사역, 제자 사역, 교회 개척 사역, 유치원 사역, 양계 사역, 빵 구제 사역, 어린이부흥 사역, 어린이 사마리안 선물사역, 제자들 중 선교사 파송 사역, 지역 현지인 목회자 교육 및 돕기 사역. 참으로 긴 여정들이 끝나지 않았는데 아, 한 해가 마무리 되어 가는구나. 그 날. 그 날.
주님이 오시는 그 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이 선생 올림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