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께서 대학시절 불교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이셨는데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신앙생활 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저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어요. 심지어 어머니께서는 절을 3개나 가지고 계셨죠. 대학 시절에는 불교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불교와 가까이 있었어요.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전도를 하면 “너나 잘 믿어. 나는 부처님 믿을 거야” 하고 핍박하는데 앞장서는 학생이었죠. 심지어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앞에서 전도하는 사람들과 싸운 적도 있어요. 저의 삶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승승장구였죠.


그랬던 제가 32년 만에 얻은 보물 같은 딸 혜원이의 사고로 인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어요. 93년도 9월 25일, 토요일 11시 50분, SBS 행복 찾기 생방송을 마쳤는데 “교통사고, 성모병원 응급실 딸 혜원 생명 위독” 이라고 적힌 쪽지가 와 있었어요. 그 쪽지를 전달 받고 여의도에서 강남 성모병원까지 차를 몰고 달려갔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교통체증이 엄청나게 심해서 꼼짝도 못하는 거예요. 가는 길 내내 계속 눈물이 나왔어요. 나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영등포쯤에서 너무 절박하고 급한 나머지 병원까지 가면서 저도 모르게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무 것도 모르는 3살짜리 딸 혜원이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절규하면서 제가 핍박하던 하나님께 한편으로 떼를 쓰듯이 “하나님 당신이 살아 계시다고요? 그렇다면 저와 내기를 합시다. 제 딸을 살려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딸아이를 이렇게 데려가지 마십시오. 지금은 안 됩니다! 제 품에 있을 때 데려 가세요!” 라고 울부짖으며 매달렸어요. 그렇게 50여 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최혜원'이란 이름을 찾아서 가보니 침대는 이미 흰 천이 덮인 상태였어요. 흰 시트에 누워 있는 딸을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어요. 차가웠던 아이의 몸에 따뜻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저는 “ 이 아이 안 죽었어요!, 아이 안 죽었어요!”라고 소리를 질렀죠. 아이는 “캑캑” 하며 입으로 뭔가 쏟아내려 했고, 저도 모르게 아이 목에 손가락을 넣어서 무언가를 빼냈죠. 그 순간 핏덩이가 나왔고 제 딸 혜원이는 “휴우”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아빠, 아빠” 라고 말했죠. 죽은 아이로 사망선고 받았던 혜원이가 그렇게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어요! 그 후 저의 딸아이는 병원생활을 2년 했습니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으니깐 2년 동안 온 가족이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출퇴근을 병원으로 하고, 제 아들은 5살이었는데 엄마와 할머니가 다 병원에 있어서 병원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녔어요. 그러다 어머니께서 병원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와 친해지게 되셨는데, 그 분은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하셨어요. 알고 보니 어느 교회 권사님이셨고, 새벽예배 갔다 바로 병원으로 출근하셨던 거예요. 청소부 일은 고되다면 고된 업종 아닙니까. 그런데 이 분은 365일 얼굴이 해처럼 빛이 났어요. 매일 병실에 들르셔서 혜원이가 자고 있으면, 얼굴 한 번 보고 중얼중얼하고 나가시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기도하신 거였어요. 그런 모습을 저의 어머니가 보시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어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애비야, 나 뭐 좀 알아봐야겠다. 청소하는 저 여편네, 나하고 동갑인데, 도대체 속에 뭐가 들었기에 만날 얼굴이 저렇게 해같이 빛이 나냐?” 이게 바로 예수의 마음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이었어요. 그 때부터 저희 가족들이 믿음 생활하기까지는 2년 정도 걸렸습니다.

나중에 출애굽기를 묵상하다가 또 은혜를 받았어요.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출애굽하면서 40년간 광야생활을 시키시잖아요. 그런데 지중해 지도를 탁 펴놓고 보세요. '애굽'이라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 이스라엘까지 바닷길로 가면 65km 밖에 안돼요. 아무리 천천히 간다 해도 열흘이면 도착하죠. 하지만 그 길을 40년을 돌리셨어요. 왜 그랬을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서는 율법에 억압되지 말고, 처음에 창조한 그 모습대로 살았으면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봐요. 그렇게 하려면 4백 년 종살이 하는 동안 덕지덕지 붙은 때를 빼야 하잖아요. 광야 생활 40년이 그 시간인 거예요. 그게 바로 시간의 십일조죠. 저는 이걸 보고 얼마나 은혜 받았는지 몰라요. 출애굽기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아,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병원에 2년간 붙잡아 두신 것이 세상 때를 벗겨 내고자 하심 이었구나'를 그제야 깨닫게 되었죠.

아나운서와 방송 MC로서 최고의 절정과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다 내려놓으시고 기독교 방송에서 섬기고 헌신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제가 20년이 지나는 동안 어마어마하게 큰 인기를 주셨어요. 97년도에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인기와 물질적인 복을 주셨는데, 저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실컷 누리면서 세상적인 타락을 경험했죠. 고급 술집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다니고, 최고급 차를 지하에 세 대씩 세워놓고 그러면서도 주일예배는 한 번도 안 빠졌어요. 딸아이가 사고 났을 때 드렸던 서원기도 때문이었죠.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딸을 다시 데려가실 까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토요일이면 친구들과 만나서, 밤새 술을 마시다가도 다음 날 술 냄새를 풍기며 교회에 갔어요. 그 때 사랑의 교회를 다녔는데 세례를 받기까지 8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저도 원래는 썬데이 크리스챤과 비슷한 그림자 성도였죠. 지금도 대형 교회에는 그런 성도분들이 많잖아요. 예배를 나가긴 하지만 말씀만 듣고 축도하기 전에 도망가고, 제가 보기에는 그런 분들이 교회에 30%는 될 거예요. 저도 이 생활을 많이 해봤잖아요. 제가 대형교회 가서 간증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안에도 그림자 성도가 분명히 계십니다. 잘못된 겁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림자는 피동체지 주체가 아닙니다. 그림자는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세요.”

제가 처음 기독교 방송을 시작할 때, 일반 방송도 함께 병행했어요. 처음 <내가 매일 기쁘게> 섭외 받았을 때 지방에서 녹화하고 올라오고 있을 때였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는데, “출연료는 없습니다. 교통비만 드립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래,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런데 그것도 제가 생각하는 거잖아요.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신 것이었더라고요. 나중에는 세상 방송을 하나씩 끊으시더니, 오직 이 방송 하나만 남기셨어요.

MC로서 10년간 최고의 위치에 서보니, 세상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세상의 가치가 하나님의 가치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 이렇게 기독교 TV CTS에서 '내가 매일 기쁘게'를 진행하고, 많은 교회들을 다니며 간증하는 사람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한답니다.

집사님께서 늦게 낳은 따님이 축복의 통로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희 딸이 어렸을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갔어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교통사고로 인한 얼굴 상처 때문에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 둘이 캐나다로 가고 저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됐어요.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니 저녁에 술 한 잔 하는 게 일상이었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 주신 그 딸이 그렇게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심한 사춘기를 앓았어요. 그렇게 착했던 아이가 머리색을 일주일에 몇 번씩 바꾸고, 하지 말라고 하는 짓만 골라서 했어요. 같이 사는 아내는 속이 많이 상했죠. 이제는 애가 커서 싸움도 안 되고…, 제가 캐나다에 가서 혼을 내다가 손찌검을 했더니 집을 나가 버렸어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는데도 끝까지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 때 공항에서 얼마나 속이 아파서 울었는지 몰라요.

한국으로 돌아와 금요 철야 작정기도를 했어요. 우리 딸 고쳐달라고, 우리 딸 낫게 해달라고, 제자리로 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딱 세 글자를 보여주시는 거예요. “술, 끊, 어.” 제가 끊어봐야 일주일도 못 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끊어주세요.“ 하나님께 부탁드렸죠. 그리고 집에 왔는데 잠이 안 와서 밤을 샜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면 일주일 동안 술 약속 전화 안 오게 해주세요.” 했는데 진짜로 일주일간 전화가 안 왔어요. 그래서 그 주 금요일에 너무 좋아서 교회로 달려가 “하나님 저 일주일 동안 술 끊었습니다!” 하고 자랑했어요. 여태까지 집에 술이 그렇게 많이 있는 줄 몰랐는데, 양주로 2천만 원어치가 있더라고요. 그것도 다 내다 줘버렸어요. 그게 벌써 15년 전 일인데, 그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방울도 술 마신 적이 없어요.(할렐루야!)

저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 있는 저의 딸에게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어요. 한국이 밤 9시면 캐나다는 새벽 5시예요. 제가 금요 철야 예배할 때, 아내도 새벽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드렸어요. 한국과 캐나다, 양쪽에서 기도를 올렸던 거예요. 어느 날 아내가 새벽 기도 다녀와서 애들 도시락을 챙기고 있었는데 혜원이가 다른 때 같으면 2층에서 내려와서 엄마한테 인사는커녕 틱틱 거리기 일쑤였거든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의 반항 행동이었죠.

그런데 그날은 “일어났니?” 했더니 엄마한테 다가와 백 허그를 하더래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더니 “엄마. 미안해” 하고 사과를 하더래요. 아이의 방황이 끝난 거예요. 엄마는 뭐가 미안한지도 묻지 않았대요. 그리고 뒤돌아보면 울 것 같아 “알았어” 하고 눈물을 흘리며 계속 음식 준비를 했대요. 그 이후로 혜원이는 착한 딸, 신실한 딸로 거듭났습니다. 그 후에 저까지 단련해 성경공부와 제자 훈련까지 시키셨어요. 우리 집안에 35년 만에 태어난 딸아이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면서 저희 가족의 구원의 통로로 쓰시더니, 결국 축복의 통로로 사용 하신거죠. 그런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집사님의 기도제목과 앞으로의 비전을 말씀해주세요.


저의 기도제목은 “Finish well”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제가 맡은 사명을 잘 마무리하고 주님께 '수고했구나. 참되고 충성한 종아~' 이 한 마디 듣는 것입니다. “종에게 무슨 계획이나 비전이 있겠습니까?” 하신 잘 아는 이슬람 선교사님의 말씀처럼 제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말씀에 눈치껏 움직여야죠. 그저 순종하고 주의 뜻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 계획이고 비젼입니다.

집사님께서 좋아하시는 성경구절과 코비드19와 아시아인 혐오범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재미교포 크리스찬들에게 신앙적으로 힘이 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으시면 전해주세요.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전도서 5장 11절 말씀을 자주 묵상하곤 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께 까불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죠.(웃음)
디아스포라는 정말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이들도 현재 캐나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타지뿐만 아니라 고국에 살아도 우리 인생 자체가 디아스포라죠. 나그네의 삶이니까요.
현재 아시안 혐오범죄, 인종차별, 코로나19 등등 정말 힘든 시기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기도로 중보하며 주님께 더욱 간구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더 큰 사랑을 구하시면서 힘내십시오. 사랑합니다!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정리 송다해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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