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은 아니었습니다”

사라진 예배공간

K국 정부는 매일 '위기'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 그리고 나 역시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않은 채 덤덤하게 일상을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그랬고, 에스겔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겔 22:30)

현재 등록된 대부분의 교회들은 모임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밤을 새워가며 온라인 예배 영상을 작업해서 송출했지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먼저는 성도들이 제대로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고, 저 또한 영상 예배가 익숙하지 않아서 일단 내려놓고 기존에 하던 대로 한 목자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소규모로 주일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최근에 카페 운영이 어려워져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약 1년 정도 진행된 모임이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대면 혹은 비대면,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멈추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희가 거주하는 집의 오래되고 썩어 잘 열리지 않았던 나무 창문을 플라스틱 창문으로 교체했습니다. 공사가 예상보다 길어지기는 했지만, 매일 아침 잘 열리는 창문을 활짝 열면서 감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창문을 열면 약 30여 평 되는 텃밭도 보입니다. 자주 텃밭에 나가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잡초를 뽑고 채소를 가꾸다 보면, 마음 한켠이 뿌듯해집니다. 어느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집수리하고 텃밭 일구자고 온 것이 아닌데, 모든 것을 코로나 핑계 대고 마냥 주저앉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한 자매가 기억났습니다. 관공서에 일을 보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로 만난 자매였습니다. 자매는 한국어와 한국에 관심이 많아 계속 관계가 이어져왔습니다. 저희 부부와 그녀의 남편과도 함께 식사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다 드러내놓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좋은 친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무슬림이지만, 우리에 대하여는 큰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부부를 만나고 나서, '그래 내가 텃밭에 농사하자고 온 것 아니고 이거 하러왔지!'하며, 이 부부에게 복음의 좋은 열매가 맺히도록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길 … 다시 주님께로

제가 6살 때로 기억합니다. 시골을 떠나 직장을 다니던 누나를 따라 부산에 갔습니다. 낮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가 졌고, 그만 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황해서 엉엉 울고 있던 저를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동사무소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퇴근을 하고 돌아온 누나가 사방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동사무소에서 저를 발견하고는 눈물의 상봉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최근에 멘토링을 받고 있는 노 교수님과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진단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동감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어섰습니다. 익숙해져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지도도 안보고 길을 찾고, 매일 그냥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잠시 멈추어 서서 돌아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지도를 펼치고 다시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생수의 근원 되시는 그분께 매일 매 순간 나아갑니다. 그분에게서 생수를 공급받고 또한 메마른 이 땅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복음기도신문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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