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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사 | 이그나티우스의 생애와 그의 글들 ①

크리스찬타임스 | 등록일 2021년07월30일 14시1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장면

 

이그나티우스의 생애는 단편적인 전설로만 내려올 뿐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없다. 그의 이름 이그나티우스는 헬라어 ‘이그나티오스’의 라틴식 이름 ‘이그나티우스(Ignatius)’이다. 학자들은 그가 유대인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헬라식 이름인 ‘이그나티오스’가 아니라 로마식 이름인 ‘이그나티우스’가 원 이름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름의 뜻은 ‘불 같이 뜨거운 사람’이다. 순교에 대한 열정과 기독론(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뜨거운 신앙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이름이다. 그는 모든 서신에서 자신을 ‘테오포로스’로 소개한다. ‘하나님을 지고 가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다. ‘지고 간다’는 말은 자신 안에 하나님을 품고 있다는 뜻이 더 강하다.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전무하다. 사막의 성인으로 불리는 히에로니무스는 ‘이그나티우스가 젊었을 때 베드로와 바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사도 요한의 수제자’였다고 한다. 이것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교부들의 진술은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상당히 권위 있는 감독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감독으로 있었던 안디옥 교회 감독의 시절도 침묵에 잠겨있다. 오리겐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의 후계자였고, 유세비우스는 ‘안디옥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에보디우스가 사망한 후 이그나티우스가 제2대 안디옥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이그나티우스는 동시대 그리스도 인들이 가졌던 순교의 열망과 사도의 전통을 지키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증거 하였다는 이유로 로마로 압송되어 맹수형에 처해져 순교를 당하게 된다.
이그나티우스 순교 후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은 서머나 교회 감독으로 있던 폴리갑에게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을 베껴서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 후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읽혀지게 된다.

 

하나님을 증거 했다는 이유로 맹수형에 처하게 된 이그나티우스는 안디옥에서 체포되어 열 명의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로마로 압송당한다. 압송 경로는 아래와 같다.
 

안디옥-셀레우케이아-길리기아 또는 밤빌리아 해안-빌라델비아-서머나-드로아-네압볼리- 서머나-드로아-네압볼리-빌립보-마게도냐 해안-로마.
 

이러한 경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일부러 로마로 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여러 곳을 방문하고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몇몇 학자는 두 가지 이유를 든다. 하나는 압송 경로와 시간이 길어질 경우 순교 열이 식어지고 살길을 찾게 될 것을 기대한 것이다.(마치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아브라함이 사흘 길을 간 것처럼) 그럼 교회는 존경할만한 지도자를 잃게 되고 몰락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러 곳에서 교회 감독이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기독교인들이 공포와 절망감, 무력감에 휩싸이게 되어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로마로 압송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 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그나티우스는 교인들에게 자신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말라고 당부하기에 이른다. 이그나티우스는 석방되기 보다는 순교를 열망했다.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편지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어 가면서 모두 7통의 편지를 쓴다. 4통은 서머나에서, 나머지 3통은 드로아에서 쓴다. 초기 4통은 에베소서, 마그네시아서, 트랄레스서, 로마서이고, 드로아에서 쓴 3통은 빌라델비아서, 서머나서, 폴리갑서 이다.
이그나티우스는 편지를 통해 각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특별히 마지막 편지는 후에 순교하게 되는 서머나 감독이었던 ‘폴리갑’에게 쓴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 나타난 사상과 내용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는 두드러진 몇 가지의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는 일치로의 열망이고, 두 번째는 가현설에 대한 경고, 세 번째는 순교에의 열망이다. 네 번째는 성찬에 대한 관심이다.
일치로의 열망은 이그나티우스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인 군주적 감독제이다. 군주적 감독제는 그당시 교회들이 처해있던 입장을 살펴볼 이유가 있다. 내적으로는 이단의 공격성, 그리고 외적으로는 제국의 박해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군주적 감독제가 최선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이유가 하나님을 전했다는 이유 말고도 교회 안의 분쟁으로 인한 결과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한다. 정확한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한 2세기 중반의 경우 교회는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외부적으로 로마의 박해가 지속적으로 계속되었고, 안으로는 이단으로 인한 교회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그나티우스는 편지를 통해 교회가 분열하는 것은 사단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마그네시아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과 영에서 오는 일치가 이 교회들 안에 있기를 바란다. 또한 가장 귀중한 것인 믿음과 사랑에서 오는 일치,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아버지에게서 오는 일치가 있기를 기도한다.”
아마도 마그네시아 교회는 타교회 비하여 심각한 분란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열은 거짓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교만, 유대교에 대한 잘못된 숭상으로 인한 것들이었다. 교회의 하나 됨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자들은 지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분열과 분노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까지 말한다.(빌라델비아서 중에서) 

가현설을 거부해야 한다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깊이 스며 들어왔다. 초대교회 이단 가운데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적지 않았다. 초대교회 교부들의 주요한 이단 논박의 대상은 다름이 아닌 영지주의자들이었다. 가현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으로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지 않고 가현(假現)즉 거짓으로 나타났다고 믿는 것이다. 가현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인할 뿐 아니라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 속죄설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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