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툴리안

이러한 견해를 '그리스도 양태론(modalism)'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이디어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신비롭게 하였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한 사람이지만 나는 아들이요, 형제이며,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선생이며, 글쓰는 사람이요, 물건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하나의 신적인 인격,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인지는 의문이다, 아니, 잘못된 것이다.


터툴리안은 이와 관련하여 '천부수난설'(Patripassianisms)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수난”이란 뜻으로 터툴리안에 의해 '양태론'을 거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만약 '그리스도의 양태론'이 옳은 것이라면 아버지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은 분이시다.? 문제는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시다.
더구나 양태론에 의하면 에수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당신은 나를 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 27:46) 하고 부르짖었을 때 그는 아들은 곧 아버지니까 실제로는 자신에게 부르짖은 것이다.(프랙시아스에 반대하여 30).

예수님이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누가 22:42)”라고 말했을 때에도 실은 “내 뜻대로 마시고 그러나 내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한것이다. 양태론은 이러한 경우 전혀 합리적인 설명이 될 수 없으며 세개의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머리가 나타나서 서로 그들이 담당한 역할을 하였다(예수의 세례와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기도를 비교해 보라)는 다른 복음서 이야기들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터툴리안은 프랙시아스의 견해를 반박하였을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의 삼위일체론을 천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 교리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뿐 아니라 여러 세기동안 사용되었던 용어들을 만들어내고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터툴리안은 삼위일체(trinita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질량을 언급하면서 이 논쟁에서 처음으로 본체(substanti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터툴리안은 인격(persona)이라는 용어도 역시 사용하였다. 라틴어의 본래 의미는 '배우들이 연극에서 맡은 배역을 보여주기 위해 뒤집어 쓰는 '가면 또는 마스크(mask)'이다. 그리스도의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지의 형상화를 이용하여 한 배우가 단지 가면을 바꿔쓰면서 여러가지 역할을 나타낼 수 있듯이 한 개체이신 하나님도 여러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터툴리안은 여러가지 형상을 보여주는 한 배우가 아니라 연극에서의 여러가지 배역을 강조하기 위해 '인격(persona)'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관중들은 그들이 무대에서 행동하고 반응하는 방식에서 보듯이 배역들이 그들의 관계에 의해서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것이다. 같은 배우가 무대에서 동시에 두개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에 언급한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창조와 역사와 구원의 무대에서 똑같은 역할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세례를 받으셨다. 아버지는 말로서 예수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신분을 밝혔고 성령은 비둘기로 예수 위에 내려왔다.(마태복음 3장 16-17)어떻게 한 배우가 세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가?

도리어 하나님은 그의 일치에 덧붙여서 그 일치 가운데 구별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구별은 그들의 관계를 통한 증거이며 그것들을 “인격들”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 가운데도 역시 내포되어 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있으며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말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복음 10:30) 그러므로 터툴리안의 도움이 되는 용어를 사용하면 하나님은 하나의 본체(substance)를 가졌으나 세 개의 인격체(persons)이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하여 논의할 때 소개하였던 같은 용어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논의에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 전에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었던 사람들 보다도 문제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의 '본체'와 세개의 '인격'- 아버지, 아들 그리고 영인데 반해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에 두개의 '본체', 신성과 인간성이시다. 터툴리안이 주장했듯이 예수가 진정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한가지 이유는 하나님은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육신을 가진 진짜 인간만이 죽을 수 있다. 만약 영지주의 크리스찬들이 주장하듯이 예수는 인간으로 나타내 보였을 뿐 이라면 그의 죽음 역시 단지 실제인듯이 보였을 뿐이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거기에는 죄나 구원을 위한 진정한 희생이 있을 수 없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은 예수의 진정한 인간성이지 그의 신성이 아니다.

터툴리안은 이러한 설명의 많은 부분들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점이 바로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신이 세상에 대하여 '바보'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믿지 않고는 '현명'해 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말이기 때문에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매장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은 분명하다.(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5) 이와같은 놀라운 진실들은 결코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신의 실재임에 틀림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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