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주민들 속에서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싹텄다.

애국과 사랑의 길 2
군복무를 하던 나는 그때 한국에서 올림픽경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선인민군 신문에 “남조선괴뢰도당의 올림픽개최는 분열을 추구하는 매국적 행위이다”는 논설이 실리고 그 논설에 대한 독보모임이 있었는데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그저 올림픽이라는 그 말이 귀전을 맴돌면서 넋을 잃어버렸다.
북한주민들의 경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동기가 88올림픽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식민지로 사람 못살 불모지로 형상하고 거지떼가 욱실거린다던 한국에서 세계적인 대축제를 진행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남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는 충분하였다.
물론 그 전에 TV를 통해 시위를 진행하는 남한주민들의 옷차림이나 고충건물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결정적 계기는 이때였다. 94년 군에서 전역하고 사회대학 학생으로 사회생활을 접해보니 사회는 군부보다 남한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더 농후하였다.
88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주민들 속에서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싹텄고 결국 '한국바로알기 운동'이 벌어졌다. 시장에서 소형라디오들이 부리나케 팔렸고 이 소형라디오들은 불 없는 어두운 집안의 이불안에서 아주 조용히 한국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한국정보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욕구는 귀에서 눈으로 업그레이드 되어갔다. 국경연선의 밀수꾼들은 한국 드라마로 떼돈을 모았다. 나 역시 이 한류열풍에 동조하여 죽을 먹으면서도 아깝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돈을 엄청 날렸다.
이렇게 라디오방송청취와 드라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북한과 너무나 다른 한국, 북한사회가 나에게 가르쳤던 남조선과 너무나 다른 대한민국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속담에 “재미난 곳에 범이 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드라마에 도취되어 경계심을 잃어버린 탓에 고만에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드라마 시청에 동참했던 6명의 교사들이 보위부의 조사를 받았다. 외국드라마도 아니고 남조선 드라마 건이라 무사치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아버님이 물려준 40년의 군복무 대가의 선물 TV와 힘든 생활난 속에 어렵게 마련한 VCD기, 경대가 시장으로 나갔다. 이렇게 마련된 돈이 위력을 발휘했다. 감옥행이 좌천 행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때 동료들은 “죽는 것 보다 까무러치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하며 교단에서 노동 현장으로의 좌천을 서로가 격려했던 생각이 난다. <계속>
박세준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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