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노숙자체험을 아틀란타에서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다. 3시간 후면 비행기를 타고 평화나눔공동체 본부가 있는 워싱톤 디씨로 돌아간다. 공항으로 가면서 노숙자선교와 인종화합을 위한 부활절 꽃심기 행사에 몇 가지 조언을 할 것이 있다며, 운전을 돕고 있는 송요셉목사님과 김마이클 집사님에게 행사장으로 사용될 다운타운 빈민가에 있는 노숙자 쉘터 한 곳을 잠시 들렀다 가자고 했다.


달리던 차안에서 그간 노숙자체험을 위해 입고 다녔던 외투를 한 노숙자에게 선물로 기증하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노숙자체험을 위해 눈보라에도 견딜 수 있는 방한복을 중고재활용품 판매장인 'Goodwill'에서 12불을 주고 구입했었다. 첫눈에 두텁고 따스해 보이는 방한복이 들어왔다. 옷 안을 살펴보니 상표에 새겨진 영문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흔히 말하는 명품 '런던 포그'였다. 비록 남이 입던 헌옷이지만 명품답게 옷 안에 방한용 조끼도 붙어 있었고 두터운 모자까지 달려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몸집이 큰 미국사람이 입던 옷인 터라, 입고 보니 나는 말 그대로 막대기에 입혀놓은 논두렁 허수아비와 같았다. 특히 그 유명한 뉴욕 맨해튼 패션거리를 지날 때 가끔 지나가던 사람들이 왜 뒤돌아 곁눈질하며 나를 처다 보았는지 이해가 된다. 여하튼 세찬 눈보라에도 견디게 해 준 12불짜리 명품 헌옷. 한 달간 나의 보디가드가 되어 준 그 옷에 감사할 따름이다.


쉘터에 막 도착을 했을 때, 때마침 두 분이 노숙자들에게 다 못 나누어 준 외투를 마저 주고 싶다고 했다. 새 옷을 보더니 노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옷을 얻지 못하고 실망에 찬 모습으로 돌아가는 노숙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에 잠기기도 했다.


때마침 마이클 집사님이 전에 나누어 준 헌 옷이 너무 작아 고민을 하는 노숙자 형제가 있다며 소개했다. 올랜도 존슨이라고 인사를 하는 형제는 옷이 낡아 가늘게 줄무늬로 뒤덮인 검정 가죽잠바를 입고 있었다. 마이클 집사님은 형제에게 내가 노숙자체험을 하며 입은 거룩한 옷이라고 부추겼다. 그러자 형제는 그 값진 옷을 꼭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형제에게 '런더 포그' 상호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명품이라고 했다. 나는 형제에게 노숙자체험을 통해 나의 친구가 된 옷이라고 했다. 그러자 형제는 명품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담긴 '거룩한 옷'이라며 잘 입겠다고 했다. 그 옷을 입고 노숙생활을 벗어 훨훨 날아 새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틀란타 공항대합실에서 30일간의 노숙자체험을 되새기고 있는 동안 걸려온 셀폰전화를 받고 보이스 메일을 첵크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눌러 그만 그 안에 있는 500명 이상의 전화번호를 다 지워버렸다. 공항에 있는 전화회사로 갔더니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겨우 외우고 있는 것은 아내의 셀폰 번호뿐이었다. 디씨에 도착하면 긴급히 연락할 일이 산적되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숙했다. 앞이 캄캄하고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간 컴퓨터와 셀폰에 너무 노예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일간의 육체적인 노숙자체험에 정보와 통신까지 내려놓은 노숙자가 된 기분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마치 무소유의 인간처럼 그저 묵상에만 잠겼다. 그러나 순간 남들이 하지 않은 노숙자체험까지 하며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같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시애틀 둥지선교회(김진숙목사), LA울타리선교회(나주옥목사), LA 소중한사람들(김수철목사), 시카고 기도의집(김광수목사), 뉴헤이븐 아가페교회(유은주선교사), 뉴욕 브니엘선교회(최명희선교사), 아틀란타 평화나눔공동체(송요셉목사), 볼티모어 평화나눔공동체(김봉수목사), 워싱톤 디씨 평화의집(박현호선교사), 그리고 뉴욕 평화나눔공동체와 워싱톤 디씨 평화나눔공동체본부 식구들. 이들의 귀한 사역에 경의를 표하며, 각 도처에 있는 교회들과 개인들이 많은 기도와 후원으로 이들을 협력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최상진 목사(평화나눔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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