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체제가 무너진 직후 1993년 러시아에 선교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그 곳은 혼란한 상황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갈급한 분위기였어요. 연주하는 중에 곳곳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주 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불안했는데, 찬양 연주를 들으며 놀라운 평안함을 느꼈다'고 말해왔지요.”
김애자 피아니스트는 1만 여명이 모인 러시아 레닌그라드 경기장에서 인생이 전환되는 경험을 했다.
“저는 클래식 연주가였는데 그 날 '찬송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일생 동안 피아니스트로 훈련받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뜨거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들의 평안함을 보면서 일생을 바쳐 할만한 일이며, 땅끝까지 증인이 되고 싶은 감동이 밀려왔어요.
그 전까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공부하면서 목표한 것을 이룬 것도 많았지만, 그 만족감이 너무나 짧고 이루고 나면 더욱 크고 높은 곳을 열망하게 되며 만족이 없었어요. 인생의 공허, 허무, 좌절감을 느꼈지요. 이처럼 만족을 모르던 제가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는 깊은 연주의 세계에서 만족을 찾았습니다.”
러시아 연주 중 예배자로 거듭나다
동경우에노예술대학에서 수학하고. 비엔나국립음대, 뉴욕주립대(석사), 텍사스대(음악박사)를 졸업하며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온 그는 목표가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는 것에서 예배자로 바뀌었어도, 혹독한 연습을 지속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무대에 서지만, 재능을 받은 자가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할 몫을 다하면서 성령님께 맡길 때에 비로소 폭발적인 힘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피아니스트셨고, 영창피아노를 창립하셨어요. 저는 항상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요. 아버지는 첫 음악선교사로 29세에 한국에 오신 마두원 선교사님(Rev. Dwight R. Malsbary)의 음악에 매료되어 피아노를 시작하셨는데, 저까지 2대에 걸쳐 그 분께 음악을 배웠습니다.”
마두원 선교사는 1929년 미국 북장로교 음악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돼 평양숭실전문학교 등에서 가르치며, 박태준(전 연세대 음악대학장), 한동일, 백건우(피아니스트), 김동진(작곡가) 등을 배출했다. 또한 1936년 일본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학생들과 기도모임을 만들었는데, 방지일, 박윤선 목사 등이 함께 했다.
“그 만남으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시는구나. 그 복음의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구나 생각하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감탄하곤 합니다.
사역자로 헌신하고자 결심하고 94년도에 LA에서 처음으로 찬양 콘서트를 열었는데 1천여명이 모였었어요. 그런데 무대 뒤에 있는데, 갑자기 몸에서 땀이 나면서 양 손이 비틀어졌어요. 당황해서 어두운 곳에 앉아있는데,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지요. 30분간 연주를 시작하지 못했고, 청중에게까지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전도사님께서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 물리치면서 나가라'며 저를 무대로 떠미셨어요. 그리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서 손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러서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승리로 이끄셨어요.”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부름에 응답한 후 4년 남짓 광야생활을 지났다. 김 선교사는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깊은 기도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고 오히려 평안했다”고 술회했다.
“손을 다쳐서 연주를 할 수 없었고 재정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지요. 그러나 돌아보면 저의 모난 부분을 고쳐주시고, 새벽기도 반주자로도 봉사할 수 있게 하셨지요. 2006년부터 완전히 삶을 정리하고, 집도 팔고, 남편(조성문 집사)과 여행케이스만 들고 세계를 다니며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최초로 파송된 마두원 음악선교사의 제자
지난해 김 선교사는 영국 웨일즈, KWMC 시카고세계선교대회, 버지니아 JAMA 중보기도 컨퍼런스 등에서 연주했다. 그는 2월 중순까지 애틀랜타에 거주하며, 오는 1월20일(주) 오전 11시 주님의 영광교회(이흥식 목사), 23일(수) 7시반 새생명교회(유영익 목사)에서 연주하고, 2월 중순 LA와 도쿄, 3월초 한국, 5월초 다시 웨일즈에서 사역할 계획이다.
그는 교회들이 문을 닫고 술집으로 전락하고 있는 영국 웨일즈에 찬송음악으로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웨일즈는 우리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에요.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말 성경을 배에 싣고 평양에 상륙하자마자 목 베임을 당해 피 흘린 땅에 세워진 교회가 평양의 장대현교회가 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10개중 7개 영국교회가 문을 닫고 술집으로 전락했으며,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들에 25여명이 모여요. 특히 유럽의 신학교들은 문을 닫고 있어 많은 교회가 영어권 사역자를 필요로 합니다. 웨일즈에서 연주하던 날, 노인 성도들은 잃었던 노래를 다시 찾았다며 감격해 했지요. 이 땅에 교회의 부흥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하나님 부르시는 곳에 순종하며. 한 사람이라도 위로받는 곳에서 연주할 것입니다.”
찬양이 주는 삶은 놀라운 것이다. 그가 추구하던 꿈은 최고의 명예로운 연주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자가 되었다. 최초로 한국을 찾은 마두원 음악선교사의 한국인 제자는 복음을 전하는 음악선교사가 되어 세계를 누빈다.
홈페이지: www.aijakim.com
문의: 213-479-6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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