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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한국과 미국에 한인들의 신학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크리스찬타임스 | 등록일 2018년07월06일 18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대한민국 최초의 기독교 계통 감리교 신학교육기관
1910년대 감리교신학대학교 전경

 

 

작디작은 대한민국에 근 200개의 신학교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많은 학교에서 매 해 수많은 목사 후보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거의 다 목사가 된다.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것이 기뻐할만한 일일까?

 

현재 한국과 미국에 많은 무직 한인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신학교가 많은 사실을 찬양하고 있고, 신학생을 얼마든지 많이 받으려고 경쟁을 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것은 좋은 목사, 자격 있는 목사를 기르자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신학교를 경영할 수 있을까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신학생이 많아야 학교가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교 이사들과 행정책임을 진 사람들은 학생을 많이 받아서 그들의 주머니를 털 생각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훌륭한 교육을 받을까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교수들과 직원들의 월급을 조달할까를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 하나를 유지 경영하려면 학생이 적어도 3000명이 있어야 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까 3000명 까지는 안 되어도,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장신대도 금년 (2012)도에 재학생이 2600명 정도라고 한다.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아직 학생 수가 모자란다는 말이 된다. 즉 학생의 주머니를 터는 방법을 쓴다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기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1) 그 첫째는 교파가 분열하면서 교파마다 신학교를 가지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교파마다 자기들이 내세우는 교리와 주장이 있어서, 다른 신학교에 자기 교파 목사 후보생을 보내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목사들이 자기가 신학교 학장이 되고 교수라는 이름을 가지려고 한다. 자격과 실력이 있든 없든 그런 간판을 가지려고 한다.  (2) 다음은 신학생이 많고 목사가 많은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3) 그리고 목사가 되는 것이 가장 보람이 있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이냐 말이다.

 

헬라-로마의 이원론이 팽배한 사회와 시대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 되어갈 때, 자연히 그 사상의 영향과 침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미 신약성경에도 그 사상을 배격하는 글들이 나타나게 됐다.  중세기 교회는 다분히 그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학이 왜곡되었다.  하늘은 좋고 땅은 악하다는 생각, 그리고 인간의 영은 선하고 귀하며, 육체는 악하거나 무가치한 것이라는 생각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귀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만 치중하고, 인간의 악한 몸에 대해서 즉 육체 생활, 사회생활은 무시하거나 방치하거나 소홀히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고행주의, 금욕주의로 치닫고, 몸을 억제하며, 탄압하는 스토익적 삶을 살았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육체는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이니 방치하고, 쾌락에 내맡기고, 방종한 생활을 하는 쾌락주의(예피큐리안)로 빠져들었다. 

 

여기서 성직자들이라는 사람들은 귀한 영혼을 다루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평신도보다 높고 귀하고 거룩하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살면서, 평신도를 깔보고, 천시하고, 지배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생활을 하였다.  반대로 평신도들은 의례 자기들은 낮은 존재요, 보잘 것 없는 존재요, 성직자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착취를 당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따라서 성직자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화려한 성당을 짓고, 좋은 사택에서 호화롭게 살았고, 반대로 평신도들은 가난해지고, 무식해지고, 점점 천한 자리로 떨어졌다. 이것이 중세교회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  그것이 과연 복음적인 것인가?  그것이 과연 참된 기독교인가?  그런 잘못을 깨닫고 개혁한 것이 종교개혁이 아닌가?  소위 만인사제론은 그런 병폐를 고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각각 달란트를 주시고, 당신의 나라 건설의 역군으로 거룩하게 부르신 것이어서, 차별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종교개혁 정신을 잃어버리고, 다시 중세기로 돌아간 것이다.  성직자가 따로 있고, 그들만이 거룩하고 그들만이 대우를 받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갔다.  목사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며, 청년들을 그렇게 지도하니까, 청년들은 거룩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에게 존경받고, 대우받는 생활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결국 신학교 지망생이 많아지는 것이다.

 

종교개혁 정신 중의 하나가 “평상생활의 거룩”(Sanctity of Common Life)의 정신이다.  이미 말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은 모두 거룩하게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농사꾼은 하나님이 농사꾼으로 거룩하게 부르셨으므로, 농사일을 거룩한 것으로 깨닫고, 그 일에 충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장사꾼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장사를 거룩한 마음으로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기의 이원 사상에서는 성직자의 일만이 거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죄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신부들 앞에 나와 고해성사를 함으로써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박창환목사 (전 장신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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