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긴장 속에 삶의 풍부가 있는가? 하지만 느슨함 속에 함몰 시키는 마지막 이별이 도사리고 있구나. 어찌해야 이 길다란 가난의 늪을 벗어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비단 목회자일지라도 하루 하루의 삶은 간단치 않다. 그냥 넋 놓고 지날 수 없다. 그렇다고 달려갈 방향조차 막연하다. 하지만 가기는 가야한다. 아,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그래, 바늘구멍만한 곳으로 빛이 비추는구나. 그 빛을 따라가면 복음의 밝은 길로 인도 되리라.

목회자로 나서면서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곳으로 한 달에 25불 정도 월세를 내고 자리를 틀고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고 경제적 빈곤은 아랑곳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버티는 삶을 유지해 왔다. 이 보다 더 열악할 수는 없다. 그래도 더 열악한 자들과 함께 정을 나누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예수 믿는다고 핍박은 이미 각오된 출발이었다. 가끔씩 핍박 받음에 대하여 독자는 호기심으로 알기를 원하나 거룩한 죽음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한 쪽 눈은 실명이고, 왼쪽 눈마저 고도 플러스 도수라 안경 없이는 일상적 생활도 불편하다. 저희가 공급하는 안경으로 그나마 말씀도 읽고 주님을 손 높여 간절히 찬양한다. 나약한 자의 순전한 찬양을 그 누가 알아주랴. 그저 손을 높이 들고 있구나. 팔짱끼고 흘낏흘낏 하겠지. 그래서 세릭 이름을 가진 현지 목회자는 마지막 찬양을 그렇게 높이 올려 드렸구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현지 목회자의 자립을 위해 마련된 비지니스 컨퍼런스에 세릭과 그의 아내가 함께 참석했다.
성공적인 크리스챤의 삶을 살고 계시는 강사분들이 열정적으로 현지 목회자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헌신하였다. 참으로 은혜로운 간증과 하나님 찬양과 지혜로운 크리스챤의 비지니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새로운 꿈을 안고 사역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도중에 고물차는 장거리 여행에 라지에타 온도가 올라갔다. 차를 세우고 뚜껑을 열자 수증기가 치솟으며 자동차의 기름기가 혼합 되면서 주위의 산소를 급속히 빼앗아 갔다.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는 산소 결핍 현상을 느끼며 인근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산소 호흡기로 기운을 차렸지만 5분후 다시 호흡이 곤란해 큰 병원으로 후송 되면서, 닥터의 마지막 심장 압박술까지 동원 되었으나 결국 그 다음날 아침 8시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평소에 이런 상황이 3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대부분 동역자들도 몰랐다. 긴장해야 하는 일인지, 느슨함으로 함몰 되어야 하는 것인지?


평소 함께 말씀을 함께 나눌때 무척이나 영성이 있고 제자의 삶이 순수 하였다.

아, 아, 아! 나는 이렇게도 멍청한 선교를 하고 있는가? 또박 또박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지 목회자에게 좀 더 진지하지 못하고 삶의 처절함을 눈치채지 못한 멍청이였는가? 장례식에서 또 다른 제자에게 물었다. 왜 이런 위급한 신체적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는가? 대답은 나의 가슴을 더 짓눌려 버린다.


하하학 … 내가 숨이 멎을 것 같다. 이 목회자는 이런 고통 속에서, 저 목회자는 이런 아픔 속에서 본인도 심장병으로 … 아이고 이를 어쩌나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주어진 이 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주께 나아가고 찬양드리며 믿음을 지켜나가는 모습에 나의 머리가 숙여진다. 그렇구나, 그렇케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목회자로 모두들 부르심을 받았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이 세상에서의 이별을 고한다.

사랑하는 제자여, 주님 다시 오실 때 다시 만나세!

L 선교사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