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에 한인들의 신학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자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학교를 살리거나, 교수들을 살리거나 하는 데 우선적인 목적을 두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바로 서고, 바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건전해야 하고, 그 신앙과 신학을 확립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신학자들이 건재해야 한다. 그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로 하여금 계속 신학을 연구하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교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을 많이 받아서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방법을 지양하고, 한국 교회가 직접 교수들을 살릴 방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마다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교회가 지금 해외로 내보내는 선교사가 1000 명을 훨씬 넘고 있다. 선교사 한 사람과 신학자 한 사람의 비중을 비교하면 어느 편이 무겁고 귀한가? 어째서 선교사 한 사람을 파송하는 비용을 신학자를 살리는데 쓸 수 없는가? 우리 교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축복하셨다.

우리 교회가 필요로 하는 신학자가 200 명이라고 가상하자. 그들을 (현재 일곱 신학교의 교수, 신학자들 전부) 우리 교회가 먹여 살릴 힘이 없겠는가? 그들은 목사 계속 교육 프로그램과 대학원 학생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기타의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투입하고, 그런 일을 통해서 수입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사 수급 계획을 짜서, 지금 남아돌아가는 목사들이 다 제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지를 계산해 낼 수 있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M. Div.학생을 받지 않아야 한다. 필요한 때가 되면, 적정 수만의 학생을 받아서 교육을 해야 한다. 지금도 호주(濠洲) 영합교회는 교회의 수를 목사의 수보다 더 많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실직(失職) 목사가 없고, 목회자들은 자신을 가지고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있게 한다. 어째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는가 말이다.


신학교 교육에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교수와 학생의 적절한 비례를 유지하고, 교수들이 사명감을 자기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즉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신 것처럼 제자들을 다듬고 닮게 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만 백성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이미 당신을 배우고 닮아서 제자가 된 사람들더러, 자기를 닮은 사람을 또 만들라는 말이었다. 결국 기독교는 예수 닮은 사람들, 곧 예수의 닮음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먼저 예수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필수적이고, 그들이 또 제자들을 예수 닮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교수들의 말과 삶에서, 즉 그들의 증언과 증거를 통해서 하라는 말이다. 오늘의 문제는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신학 지식을 얼마큼 넣어 주고 전달하는 데서 끝나고 만다는 데 있다. 예수께서 3년 간 제자들과 같이 계시면서 자기를 철저히 배우게 하신 다음 그것을 세상 사람에게 증언하게 하신 것처럼, 오늘의 신학교육도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위치

우리 한국장로교회는 초두에 말한 바와 같이, 정통주의 보수 신앙을 가진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전해준 신앙과 신학을 받아서 지금까지 그 신앙과 신학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신조는 17세기에 구라파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변함없이 그대로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장로교회는 그동안 여러 번 교파 합동 작업을 하면서, 즉 미국 북장로교회와 연합장로교회가 통합하면서 연합장로교회가 되고, 1967년 신앙고백을 발표하였고, 그 시대에 적응하는 신앙과 신학을 표현했다. 그리고 다시 그 연합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가 통합하면서 간추린 신앙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새 시대의 적응하는 신학과 신앙을 표시했다. 우리 한국장로교회도 한두 번 신앙 선언을 한 바 있지만, 그래도 그 정통주의 신앙과 신학을 버리거나 수정하지는 않았다. 즉 성경 고등비평(역사비평)을 허용하지 않는 노선을 견지하면서 나왔다.


그러나 기독교장로교회가 1951년부터 갈라지면서, 아니 조선신학원이 1940년에 승동교회 지하실에서 신설되면서부터, 고등비평을 용인하는 인사들이 교편을 잡고 성경비평학을 가르치기 시작함으로, 미미하지만 한국 장로교회 일각에서도 학문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교회 일반은 계속 정통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9년에 통합과 합동으로 다시 이분(二分)되었는데, 그러고도 그 두 교단은 여전히 그리고 공(共)히 정통주의 보수 신학과 신앙을 견지하며 나왔다. 광나루로 장로회신학대학이 옮아온 후의 장신대 학생들의 분석에 의하면, 한신대는 자유신학이고, 총신대는 보수 신학이고, 장신대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이기는 하지만, 실은 장신대 교수들 다수가 이미 성경역사비평학을 강의 중에 소개하고 있었고, 소위 고등비평이 진행되면서,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초에 이미 나의 성경형성사라는 책이 아무 저항도 없이 교과서로 혹은 필독서로 읽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TEF(Theological Education Fund) 기금으로 기독교서회를 통하여 만들어진 신약성서개론서와 신약성서신학 등이 장신대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책들이 다 고등비평적 견지에서 저술된 것인데도 말이다. 일부 학생들의 반발과 그들에 의한 소동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경의 역사비평적 강의와 연구는 진행되었다. <계속>

박창환목사 (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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