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애틀란타에서 집회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우선 집회 일정과 주제 등을 말씀해 주실까요.
네, 저도 기쁘네요. 주님의 교회(김기원 목사)에서 8월 3일(금), 4일(토) 저녁8시, 5일(주일)에는 오전 11시에 집회가 있습니다. 집회 이름을 '한 영혼 살리기 말씀 축제'라고 했습니다. 이 집회를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살려낼 수 있다면 집회는 성공적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더 귀중하다.'고 깨우쳐 주신 주님의 말씀(마 16:26)을 붙들고 집회를 하겠습니다.
집회 주제를, “예수님처럼, 꼭 예수님처럼”(Like Jesus, Just Like Jesus)이라고 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뭐, 그냥 그것 자체가 분명한 뜻을 말해주고 있어서요. 그래도 배경설명을 조금 드려보겠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감리교회에 첫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얼마 안 가서 '춘계심령대부흥회'를 했는데 그 때 강단 벽에 큼직한 붓글씨로 표어를 써 붙였어요. “알곡이냐, 쭉정이냐”였습니다. 그 표어를 읽는 순간 어떤 밝은 빛이 제 어린 마음속을 관통해 지나갔습니다. “아하, 예수 믿는다는 것은 곧 알곡 같은 사람이 되는 거구나. 결코 쭉정이처럼 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었습니다. 농사꾼 아들이었기 때문에 알곡과 쭉정이 차이를 잘 알았습니다. 그때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알곡이 되겠다고 '큰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 뒤에 '발자취'라는 신앙서적을 읽었습니다. 쉘던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 고전 'What Would Jesus Do?'의 요약 번역서입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곡이 된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언제나,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영적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유니온교회를 개척하면서 그것을 주제로 걸고 목회헌신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는 매우 부끄러울 뿐입니다.
목회자가 되신 소명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매우 긴 긴 간증인데요, 요약해서 말씀 드립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도 뒤늦게야 들어갔고, 중학교 입학은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고향에 중고등학교가 세워졌어요. 고3때 학생회장이 되었는데 학교에 무슨 부조리가 있어서 동맹휴학을 주도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이 제 가슴에 불타 올랐어요. 그로 인해 퇴학처분을 받았어요. 경찰서에 끌려가서 밤샘심문도 받았고 유치장 신세도 졌지요. 그런데 아들을 살려달라는 어머님의 눈물기도가 응답되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기적 아니고는 설명이 안됩니다. 그때 좋은 평신도가 되어 목회자를 돕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30대 후반에는 장로직분도 받았어요. 허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신비한 체험을 통하여 목회자로 부르셨고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글 쓰는 목회자'가 되라는 말씀을 또렷하게 듣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마쳤을 때 모교의 교수로 추천되었지만 그 길도 포기했습니다.
목사님의 조각글과 언론 논설들의 독자층이 상당히 두텁다고 들었습니다. '글목회' 이야기를 더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글 쓰는 은사가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알았습니다. 그 때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는데 '국군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써야 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제가 쓴 편지를 우리 반 70명 앞에서 읽어주시면서 모범편지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다른 학생들 편지도 대필하면서 글쓰는 자신감이 더 붙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교내문예작품 모집 소설부문 당선작을 냈지요. 젊은 시절엔 소설가가 되려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20대 후반에 서울신학대학교의 교수로서 조선일보의 유명한 칼럼 '일사일언' 필자가 되어 제법 이름이 알려졌지요. '칼럼'을 조각글로 바꾸어 지금도 열심히 써가고 있습니다. 제가 쓴 글 때문에 가족까지 모조리 죽이겠다는 협박을 북한으로부터 받았어도 결코 필대를 꺾지 않고 '글목회'에 은퇴목사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세계한인기독언론인협회를 창설하신 일을 빠뜨리실 수 없을 것 같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뒤에 라디오 아나운서를 지망했습니다.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실기시험에 낙방했지요. 미주에 이민 와서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한미신보 편집국장과 크리스천 헤럴드의 주필, 미주간호신보의 편집고문으로 언론인 경험을 쌓았습니다. '언론은 하나님의 활동무대'는 표어를 주님으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문은 물론 라디오, 텔레비전, 소셜 미디어가 전혀 없던 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3). 마치 텔레비전 안테나를 연상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특히 개신교회는 언론에 무척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매주일 발행하는 '주보'도 하나님의 좋은 활동무대입니다. 그래서 기독언론인들을 모아 협회를 조직하면서 바로 '하나님께서 마음 놓고 활동하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일에 목숨을 걸자.'고 격려했습니다.
대중집회 강사로도 사역하신 경험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신학 교육자이시면서, 목회자이시면서, 글목회 전문가이시면서 또 부흥집회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요.
저는 대중집회 인도자 곧 부흥강사가 될 은사는 별로 없어요. 자격조건도 안 됩니다. 키도 크고, 몸집도 우람하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음성도 사자의 포효처럼 우렁차야 하는데… 그것들과는 정 반대이고요, 조용한 학자 곧 선비 기질이 강하지요. 그런데 교회개척 초기 어떤 성도님께서, '우리 목사님이 눈물나는 설교를 해주셨으면' 하고 기도한대요. 큰 충격이 되었어요. 열심히 기도했지요. 모범적인 부흥사들의 메시지와 기법들을 관찰하고 배워갔어요. 그리고 담임목회 할 때 일주일이면 평균 7번 설교하는데 그때마다 부흥회 설교처럼 했지요. 특히 그래함 목사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랬더니 부흥집회 강사 초청이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너무 외부집회에 많이 나간다는 성도님들 불만도 있었어요. 그래서 일 년 52주간의 십일조 곧 5주간만 외부 집회에 나가기로 스스로 결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연합집회도 여러 차례 인도했는데, 보스턴지역에는 두 번 주강사로 헌신했고요, 의정부, 베를린, 마이애미 지역의 연합집회, 그리고 애틀랜타에서는 장로교회 연합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개체교회는 여러 군데서 했고, 큰 교회와 작은 교회에서 동시초청 받으면 작은 교회를 선택했습니다. 말하자면 '배워서 하는 부흥강사'인데요, '예수님이시라면 대중집회를 어떻게 인도하셨을까?'를 표준삼을 뿐입니다.
그래서 출판하신 저서가 바로 “목회자의 최고 표준 예수 그리스도”이군요. 이 책에 '함생목회론을 말한다.'라는 부제를 붙이셨던데요. 함생목회론을 알기 쉽게 요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자 그대로 '함께 살고 함께 살리는 것을 주제로 하는 목회'입니다. 상생목회나 상생신학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 차원 더 높인 개념입니다. 상생(相生, symbiosis)은 '너 좋고 나 좋고' 혹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차원이고 함생은 '나 좋고, 너 좋고, 우리 모두가 좋고, 무엇보다도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혹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자녀들도 좋고, 이웃도 좋고, 원수들도 좋고, 하나님도 좋으시고'의 차원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것을 가장 잘 나타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우리 모두'의 구원을 이루는 수평적 함생이 있고, 창조주이신 성 삼위 하나님과 피조물의 대표인 인간 그리고 우주만물이 모두 생명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전면적 함생입니다. 십자가가 보여주는 이 수평적 함생과 수직적 함생이 하나로 밀착된 진리가 바로 함생주의 신학이고 함생목회론입니다. 함생(咸生, combiosis)은 개인과 개체의 생명 하나 하나가 절대적이면서도, 절대주권자요 생명창조주이신 성삼위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을 기축신학(cardinal doctrine)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목회 있는 신학, 신학 있는 목회'라는 차원도 있습니다.
개척하신 교회를 은퇴하신 뒤에 많이 허전 하셨겠네요. 목사님은 은퇴목회자로서의 모범생이시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은퇴 모범생도 아니고, 모범생 소리 듣는 것이 사람을 무척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이제 은퇴 8년차이니까 몇 가지 교훈을 스스로 얻었습니다. 은퇴는 교회목회에서 은퇴일 뿐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실상 은퇴가 없습니다. 숨이 지면 그것이 혹 은퇴일는지요. 아마도 하늘나라에 가서도 목회를 계속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 싶습니다. 신앙생활도 목회도 원래 근본을 캐고 보면 '자기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특히 은퇴생활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것을 잃기 때문입니다. 건강 잃지요, 성도들과의 관계 잃지요, 돈 잃지요, 지식과 기억력 잃지요, 운전과 다리를 잃지요, 가족 잃지요....그것들을 이기려면 자기 자신과 격투를 벌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런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자신이 목회사역을 찾아내야 합니다. 실상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은퇴준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저의 경우는 바로 '글목회'입니다. 성경책과 컴퓨터 그리고 지면만 있으면 '숨질 때 되도록' 할 수 있는 사역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