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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沙工)이 없는 · 너무 많은 한국 (통합측)장로교회

크리스찬타임스 | 등록일 2018년08월03일 11시4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Ⅰ. 나의 신앙과 신학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위치

개혁 전통은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를 표어로 하고 있다. 즉 이미 개혁했고 동시에 계속 개혁해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 교회는 개혁전통에 속한 교회라고 말 할 수 없다. 우리 교회의 현 위치는 위에서 말한대로 중세신학으로 돌아가 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장신대가 교수 수준에서 학문을 강조하고, 구미 다른 국가의 교회와 학문에 있어서 어깨를 겨룰 정도로 향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 일반은, 그리고 일선 목회자들은 계속 옛 사상에 젖어 있으며, 개혁의 의지를 잃고,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복안이 없는 상태에 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향상하고 발전하고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그 자리에 안주하거나, 개혁에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매우 답답한 지경에 이르렀다. 총회 지도자들의 생각이 개혁의 의지나 그 필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며, 신학교 교수 수준에서는 거기에 대한 고민이 분명코 있어야 할 것인데, 과연 그런 고민이 있는가 말이다.

 

사공(沙工)이 없는·너무 많은 한국 (통합측)장로교회

우리 교단에는 신학교가 일곱이나 있고, 거기서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목사 후보생들이 갈 데가 없다. 신대원 출신 보다도 목회연수원 졸업생들이 교단 노회와 총회 대표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의 신학적 문제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뚜렷한 Vision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없다. 교회가 현상대로 나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다.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염려하며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가 의심스럽다. 결국은 신학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참신한 계획을 가지고 나가도 될까 말까 하는 위기에 있는 한국교회는 사공이 없는 배처럼 폭풍이 부는 바다를 건너고 있는 셈이다. 모두가 잘나고 자기가 사공이라고 떠드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앙과 신학에 어른이 없는 상태, 지도자가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교인이 많이 모이고, 교회당이 크면 그 목사가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먹은 소가 몸집이 크다. 독약을 먹어도 몸이 커진다. 올바른 신앙을 가진 참된 크리스천을 만들어 내는 교회여야 한다. 교인 수가 많다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 많이 배우고 오래 공부한 신대원 출신들이 주축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할 터인데, 우리의 형편은 목회연수원 출신들이 교회를 지배하는 지경이 되었고 그들의 뜻대로 교회를 이끌고 있으니, 과연 교회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도자를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모세가, 이사야가, 예레미야가, 에스겔이 필요하다. 신학교 교수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교회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하며 연구하며 마음을 합하여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항상 개혁하며 진리를 향하여 보다 나은 내일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정통보수 주의의 약점이 개선되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진리를 향하여 계속 올라가야 한다.
 

나의 신앙과 신학의 위치

정통보수주의 교회에서 태어나고 그 물을 먹고 자란 나는 자연히 그 속에서 살고 있다. 고등보통학교 4학년부터 목사가 되려는 목적을 가지고, 그러나 우선 음악을 아는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본 유학을 갔었지만, 중단하고 돌아와, 징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긴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나는, 신학의 노선이나 신앙의 노선은 안중에 없었고, 아무도 그런 것을 말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가고 있었다. 신앙과 신학에 어떤 다른 노선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고, 교단의 이름이 다르면, 즉 감리교회니 성결교회니 천주교회니 하면 그것은 거의 이단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할 정도로 유치하고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신학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1946년 10월 말에, 38선을 넘어 조선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세운 공부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내 공부를 하노라고, 신학 노선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아니 그런 문제의 유무(有無)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에서 말한대로, 이일선 학우의 “이상촌” 이라는 책이 출판 배포되는 사건으로 인해서, 신학교 안에 신학사상 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고, 그냥 대세에 밀려 신앙동지회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 운동에 연루되어 간접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김재준 교수와 송창근 학장 그리고 정대위 목사 등의 신학에 대한 비판과 반대 운동에 가담한 것이다. 거기서 결국 박형룡 박사의 노선과 김재준 교수의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무 판단력도 없으면서 소위 동지들이 가는 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계속>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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