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 유엔 대표단의 리비아 정치 협정 개정안 승인

헌법초안 국민 투표는 언제 치러질까?

리비아는 1951년 독립이 되기 전까지 수세기 동안 외국의 통치를 받았다. 1969년 무함마르 까디피(가다피)가 권력을 잡아 42년간 통치를 하였고 2011년 서구의 군사 개입의 도움으로 무장반란 세력이 까다피를 몰아냈으나 이어서 권력 공백기에 사회적 혼란은 극심했다. 리비아는 여러 세력으로 나뉘었고 2014년 이후로 트리폴리와 동부지역, 둘로 나뉘어 정치와 군사 파벌들이 경쟁하고 있다. 현재 국제기구가 인정하는 정부는 트리폴리의 파이즈 알사라즈 총리이고 동부 리비아의 많은 지역을 관할하는 리비아 국군의 리더는 칼리파 하프타르이다. 그리고 토브룩의 동부 도시에 거주하는 아길라 쌀리흐는 '대표자 의회'의 의장이고 최고 국가 의회의 의장은 뽑힌 칼리드 미쉬리는 트리폴리에 머물고 있다.

2018년 현재 리비아의 입법부는 '대표자 의회'(House of Representatives:HOR)이고 동부지역의 토브룩을 대표한다. 2017년 7월 헌법 초안 위원회(CDA)가 헌법초안을 대표자 의회(마즐리스 알누왑, HOR)에 상정했다. 8월 바이다 동부 도시의 관할 법원이 대표자 의회가 그 헌법 초안을 토론하거나 그 초안을 승인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8년 2월 해당 법원의 결정을 번복하고 대표자 의회에게 헌법 초안을 논의하고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리비아 남부의 세 인종 티부(Tebu), 투와레그(투와리꾸), 아마지기 중에서 헌법초안 위원회의 회원이었던 티부의 2명이 그 헌법 초안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반대표를 냈다. 투표 방식에 따르면 이 세 인종 공동체에서 각각의 대표가 헌법초안위원회에 들어간 후 각각 2명의 회원 중 한 사람만 찬성 투표를 해도 초안은 승인되었다. 그런데 두 명이나 반대를 했으니 그 헌법 초안은 부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려고 5월 29일 파이즈 알사라즈, 아길라 쌀리흐, 칼리드 미쉬리, 칼리파 하프타르가 파리 회담을 마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서는 헌법에 기초한 선거를 치루고 2018년 9월 16일까지 대표자 의회가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12월 10일 리비아 총선과 대선을 마치고 모든 정당과 파벌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군대와 보안 기구를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2011년 리비아 내전은 사이러네이카(Cyrenaica)에서 시작되었는데 벵가지를 거점으로 하는 '과도기 국민 의회'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2년 리비아의 과도기 국민 의회(National Transitional Council)는 사이러네이카 지역을 자치 지역으로 선언했다. 현재 리비아의 최고법은 2011년 8월에 과도기 국민 의회가 정한 헌법선언(Constitutional Declaration)이다.


금년 리비아 총선과 대선: 이탈리아는 반대하고 프랑스는 찬성하고

국제 사회 특히 유럽의 국가들은 리비아 총선 일정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었다. 7월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정부의 장관들이 리비아를 방문하였다. 이탈리아는 리비아 내 여러 부족과 세력들이 서로 화합한 뒤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랑스는 12월에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리비아 정국이 안정된다는 보았다. 토브룩에서 7월 31일에 모이기로 했던 대표자 의회는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실시에 대한 가부를 묻는 투표가 실시되지 못했다. 시위대가 일부 의원들의 입장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일부 리비아인들은 헌법 초안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한다. 이 법안은 동부의 사이러나이카(바르까), 서부의 트리폴리(따라불루스), 남부의 펫잔(fizzan)의 각 지역에서 51%+1 옵션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일부 국민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헌법 초안 위원회를 해산하고 대표자 의회가 새로 30명을 뽑아서 새로운 법안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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