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사역하는 데이비드 웽, 헤나 웽 선교사는 한국과는 깊은 인연이 있다. 본지는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계시는 선교사 부부를 초청하여 선교 사역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교사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David : 저는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Div 학위 및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켄터키 루이빌에서 D.Min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제 아내 해나 웽 선교사는 한국에서 자랐으며 대전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3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왜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가 되셨나요?
David : 16살 되던 해 처음으로 친구와 교회에 갔어요. 그리고 언젠가 참석한 부흥회에서 선교사님이 강사로 말씀을 전했는데, 그 집회에서 하나님께 콜링을 받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본격적인 사역은 언제 시작하셨죠?
David : 제가 26살 때 미국 교회에서 4년간 청소년 사역으로 섬기다 한국으로 선교지를 옮겨 IMB(남침례회 선교부) 선교사로 10년간 사역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역을 하셨죠?
David : 교회 진흥원에서 사역했습니다. 진흥원은 주일학교 교재를 만드는 총회 산하의 기관입니다. 1980년대 한국에는 마땅한 성경공부 교재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맡은 사역은 미국 주일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한국 교회 주일학교 실정에 맡게 번역하고 만드는 사역을 했습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 교회의 부흥이 일어났고 더는 도울 일이 없다고 판단하여 1991년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사역하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해주세요.
David : 제가 만든 교재가 한국 교회의 주일학교 교재로 사용되는 것이 자랑스럽고 보람되었어요. 진흥원 사역 당시 만든 교재는 한국 외에 세계 각 나라에 보급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바른 신앙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신 목사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외에는 어떤 사역을 하셨나요?
David : 91년 미국으로 돌아온 후 켄터키에서 여선교회 사역을 하시는 조이볼턴 선교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분은 리더십 훈련에 탁월한 분으로 제가 한국에 돌아가서 여선교회 사역을 돕도록 저를 교육하셨어요. 모든 교육을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진흥원 사역 및 총회 산하에 속해 있는 해외 선교부, 국내 선교부, 여선교회를 돕는 사역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여선교회 사역하시며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나요?
Hannah : 한국에서 여선교회 활동 당시 우리 부부는 미국 선교사님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 당시 개성에서 관광 중인 여성이 밤에 산책을 나왔다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북한을 방문하기에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죠.

북한 방문 시 느낀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Hannah : 한 마디로 매우 놀랐습니다. 전기도 없고, 버스도, 상점도 없는 적막한 도시였어요. 왜 버스나 상점이 없는지 가이드 분께 물어봤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북한 주민은 하루의 시간을 일과 노동으로 보내기에 상점이나 버스가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몇 가지 잊히지 않는 일이 있어요. 저희 차가 북한에 들어서자마자 감시병 두 명이 차에 탔어요.
저는 그분께 초콜릿 한 봉지를 드렸어요. 초콜릿을 건네받자 “고맙다”며 그 자리에서 한 봉지를 모두 드셨어요. 아마 배가 고프셨든지, 아니면 그 물건을 밖으로 가져나갈 수 없어 모두 먹어 치운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초콜릿을 드린 건 가족들과 같이 드시라고 선물로 드린건데 좀 놀랐죠.
그리고 개성으로 들어설 무렵 빨간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어요. “우리의 원수 미국”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플래카드였어요.(웃음) 미국 선교사님들은 한글을 읽지 못해 그냥 지나쳤지만, 저는 불안하고, 또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일본 도쿄에서는 누구를 대상으로 사역하셨죠?
Hannah : 약 5년간 조총련들을 대상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사역했습니다.
조총련은 일본사람과 구별이 힘들어요. 조선말을 모르는 분이 대부분이고 많은 조총련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일본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이 사역은 공개할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그 외에 일본에서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Hannah : 일주일에 한 번씩 문둥병 환자가 모여사는 한센마을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센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Hannah : 한센 마을에서 몇십 년간을 약사로 지내다 은퇴한 분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20여 한인 가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게 되었어요. 김밥과 한국 음식을 준비하여 방문했으나 처음엔 그분들이 창피하다고 우리 만나기를 꺼리기도 했습니다.

문둥병이 치유되지 않아 그곳에 모여 사나요?
Hannah : 아뇨, 치유는 되었으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흉한 피부의 손상으로 사람들 만나기를 꺼려서 그곳에 모여 사시는 거예요. 더 이상 문둥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고베에서 사신다고 하셨는데 고베에서 하고 계시는 사역도 말씀해 주세요.
David : 저희는 고베 지역의 일본 교회와 한국 교회의 복음화와 멘토링, 여러 셀 그룹과의 협력, 관계 구축 및 봉사 활동을 통해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CPM (교회 심기 운동)을 촉진합니다. 일본인은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오랜 사귐을 통해 서로간의 믿음이 생기고 관계가 형성되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 사시면서 이방인이 바라보는 일본인의 모습은 어떠셨나요?
Hannah : 일본 사람들의 삶, 종교를 생각하면 매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존심이 강해 누군가에게 아픔을 털어놓고 나누지 못해요. 더욱이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의지할 곳 없어 혼자 해결 방법을 찾으려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본지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David : 내년 1월에 안식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독자들께서 일본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일본 땅에 부흥이 일어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많은 분이 일본을 방문하여 복음 전파에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본인은 영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욘사마' 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를 가르치고, 제 아내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관계성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안식년 기간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고, 두 분의 사역을 위해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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