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치하의 한국교회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일본 수병(水兵)생활과 해방 ①

그 때에는 이미 아버지가 황해도 겸이포 중앙교회 담임 목사가 되어 겸이포로 이사를 와 계셨다. 징병검사를 하니 갑종 합격이었고, 일본 수병(水兵)으로 배정되었다. 징집까지는 약 2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유로, 징집 이전에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양신학교 예과 2학년에 입학하였다. 고등보통학교 졸업생은 본과에 입학할 자격이 있지만, 입학 연령이 20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당년 19세인 나는 연령미달로, 예과 2학년에 입학이 허락되었다. 채필근 목사가 교장이었고, 교수진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고려위(高麗偉) 박사를 제외한 모두가 일본에서 공부하신 분들이었고, 일본인 몇이 섞여 있었다.

전쟁 중이라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포탄을 만들고, 비행장을 닦고, 소금을 굽는 등 교실에서 공부하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채필근 교장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그 짧은 시간에도, 과목들을 요약해서 잘 가르치셨다. 본과 1학년에서는, 일본 동경 청산학원 출신인 김덕준 목사가 헬라어를 가르쳤다. 학생들이 따라가지도 못하고, 시간도 많지 않고 해서, 교과서 전반 몇 과에서 중단하고 말았다. 나는 그 과목이 재미가 있었는데, 그 과목이 중단되어 매우 아쉬웠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 서가에서 아버지가 공부하시던 헬라어 교과서를 발견하고는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겸이포에서 평양까지 약 한 시간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였는데, 그런 시간들을 이용하여 헬라어 연습문제를 혼자서 풀면서 지루하지 않게 나날을 보냈다.

아침마다 겸이포에서 차를 타고 황주역에서 다시 평양행 열차를 갈아타고 통학을 하는데, 황주역에서 여러명의 중학생들이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 송봉규라는 학생이 있었고 그는 송상석 목사의 아들이었다. 송상석 목사는 한상동 목사와 평신 동기생이신데, 본래 일본 경찰 출신이고, 친일 경향이 있어서, 제 부친의 정방산 의옥 사건이 생겼을 때,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그 사건에 연류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았다. 해방이 되자 날쎄게 남하하여 출옥 성도들 편에 들어서 활동했다.

송봉규는 최자삼(崔子三)이라는 학생과 함께 숭인상업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말동무가 되었었다. 하루는 최자삼이 일본말로 시를 써 가지고, 나더러 곡을 붙여달라는 것이었다. 소위 '통학행진곡'을 만들어 통학생들이 같이 부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일본말로 “あけゆくそらの あかつきに…”(밝아오는 하늘 여명에…)로 시작하는 행진곡조 시를 쓴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일본말 시의 첫머리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다 잊어버렸다. 그 때 내가 거기에 붙였던 곡을 기억한다. 거기에다 내 나름의 가사를 만들어 붙여보았다.

동이 튼다. 일어나라.
어서 나가자. 철마(鐵馬)를 타고.
우리 다 함께 배움의 터로.
튼튼한 몸 건강한 정신 모두 길러서
오대양 육대주의 일꾼이 되자.
자! 동무야! 우리 모두 힘을 모두어,
이웃 사랑, 나라 사랑,
용사가 되자.

일본 정부는 패색이 완연해지자 한국교회 박해의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교단을 통합하고, 교회들도 더러는 강제로 문을 닫게하고, 몇 교회를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교회당을 창고로 또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용도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련의 일로 아버지는 겸이포 중앙교회에서 밀려나고, 경의선 침촌(沈村) 역전에 세집을 얻어 이사하시고 한가한 나날을 보내셨다.

1945년 4월 6일이었다. 사복형사 두 사람이 우리집을 찾아와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다. 마침 아버지가 할아버지 댁에 가셔서, 당포교회 옆에 있는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전지(剪枝)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버지가 소꼬지에 가셨다고 말하자 형사들은 쏜살같이 그리로 가서 아버지를 체포하여 가지고 침촌역으로 오는 것이었다. 평양행 열차가 도착하자 그 차에 아버지를 태우고 형사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평양 일본군 헌병대에 수감되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신학교에 등교하는 길에 아버지께 음식 차입을 하러 도시락을 싸가지고 헌병대를 찾아가야하는 것이었다. <계속>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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