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해방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옥하는 독립투사들

II. 기억에 남은 나의 생애의 편모(片貌)들

일본 수병(水兵)생활과 해방 ③

본 수병(水兵)생활과 해방

나의 일본 수병 생활은 별로 길지 않았다. 입대한 지 한 달 반 만에 8.15 해방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짧은 군대 생활이 나에게 많은 추억과 교훈을 남겨주었다. 군대 생활은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300 명이 한 분대이고, 그것을 열 반(班)으로 나누어, 각 반이 30 명으로 구성되었다. 무었을 근거로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제 1 반의 회계 책임자가 되고 김진구라는 친구가 반장으로 임명되었다. 우리 반 책임 장교는 아즈마(東)라는 이름의 순한 인본인이었다. 입대하자 곧 일본어와 산수 시험을 치는 것이었다. 그 성적을 참고하고 있는 듯 했다. 우선 신병 훈련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의 정신을 고쳐야 한다는 뜻에서 “세이신보”(정신봉=精神棒)라고 일컫는 몽둥이를 가지고 군인들을 다스린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언동을 하면 사정없이 그 몽둥이로 엉덩이를 패는 것이다. 특히 사상이 불온하다고 보이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모든 군인들을 모아놓고, 거의 죽을 지경으로 내리 패는 것이었다. 중학교 이상 학력이 있는 자들을 골라서 반장과 회계 자리를 맡겼고, 그들이 주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소학교 교사로 일하던 우리 반 반장 김진구도 걸려서 개 패듯 맞고, 죽음 직전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열 반으로 나누어 경쟁을 시키면서 훈련도 하고 일도 시키는 것이어서, “각 반에서 한 명씩 나와”, 혹은 “두 명씩 나와”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빨리 그 명령대로 앞에 나와야 한다. 그 행동이 느려서 가장 꼴찌가 되면 그 반은 반원 전부가 단체 벌을 받는 것이었다. 한 줄로 서서 그 정신봉으로 엉덩이를 몇 대씩 맞아야 하는 것이다. 몽둥이로 맞은 자리가 검푸르게 남는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일 주일 이상 계속된다. 그렇게 호령이 떨어질 때 마다 우리 반에서는 무조건 내가 뛰어나가곤 했다. 그러니 우리 반은 그런 단체 벌을 받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한 반에서 두 사람씩 나와”하고 호령할 때, 나 혼자만 나가고 다른 사람 하나가 나오지 않아서 단체 벌을 받은 적도 한두 번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호령에 의하여 행동을 할 때, 누구보다도 빨리하고 잘하면, 그 사람은 일을 멈추고 구경만 하면 된다. 느림보들이 끝까지 그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사건건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빨리, 그리고 누구보다도 앞서나가기 때문에 언제나 처음 시작만 하고는 서서 남이 하는 것을 구경만 하면 되었다. 그것이 요령이 아닌가.

하루는 반원전체가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훈련관들이 자기들끼리 쑥덕대면서 나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고노 야쯔와 니게소다노니 니게나이노요” (요놈은 도망갈 것 같은데 도망을 안 간단 말이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한국인 훈련관으로 있는 사람이 나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처음 입대할 때 일본어와 산수 시험을 쳤는데, 200 점 만점을 받은 사람이 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관들이 나를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여간 그 짧은 훈련 기간에 심신이 단련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적어도 한번 군대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8.15 해방과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조바심을 가지고 나의 귀환을 기다리던 식구들을 일본군 수병복 차림으로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해방과 함께 석방되어 돌아와 집에 계셨다. 온 식구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서, 다시 무사히 만난 그 기쁨은 한량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 모진 고문과 금고 생활을 겪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남편의 수감, 아들의 입대, 그리고 많은 자식들을 돌보는 수고 등 형언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다. 나 역시 죽을 뻔하고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자칫하면 태평양 바다에 빠져 물고기 밥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식구 모두가 하나님의 가호로 하나도 희생 없이 다시 모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하고,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계속>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