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셨는지요?

저희 할머니가 이북서 피란 내려오신 분인데, 오랫동안 믿으신 소망교회 권사님이셨어요. 늘 할머니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중 2때 남서울교회를 저 혼자 다니고, 부모님도 나중에 같은 교회를 다니셨어요.
16살 때,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목사님께서 자기의 비전을 구하라는 기도를 하게 하셨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저에게 목사도 아니고 ‘목자’라는 말씀이 처음 새겨진 날이었습니다. 
 

북한선교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셨는데 선교사가 되신 계기와 북한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들을 소개해주십시오.

저는 국제예수전도단(YM) 출신으로 하와이 열방대학의 파송을 받아 중국에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사람을 대상으로 동원선교를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었고, 대련이란 지역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으로부터 4시간 거리에 있는 단동에서 사역하시는 분들과도 교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전도팀으로 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단동까지 팀을 인솔해 가서 기도도 같이 하는 일을 40여회에 걸쳐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단동에도 선교 센터를 개척하여 이사를 가면서 하나님께 “이제는 북한 밖에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도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010년에 처음 그런 기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침 나진·선봉에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이 혹시 우리들이 하고 있는 사역을 와서 보겠느냐면서 초청장을 내주셔서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보다 앞선 2005년에 제가 단동으로 선교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쪽배를 타고 한밤중에 압록강을 통해 북한 땅에 배가 닿았어요. 총을 가진 군인이 나와서 돈 있냐, 담배가 있냐 물어요. 제가 없다면서 가져온 음식을 건네 준 적이 있었어요. 음식을 받아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북한 군인을 보면서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 ‘지금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담배도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주만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고,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배를 북한 땅에 대고, 뱃머리 앞에서 ‘하나님, 저를 북한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로 사용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2010년 북한 땅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북한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다시 한번 기도한 것이죠.

나진·선봉에는 2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요단강을 건너 첫 동네인 여리고 성인 것처럼 나진·선봉도 두만강을 건너 만나는 첫 번째 동네라 많은 선교사님들이 왕래하며 다양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관광객으로 서방 사람들이 들어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관광으로 서방 사람들을 불러들이겠다고 얘기를 하여 일부러 관광사를 하나 차렸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오고, 그 땅을 보면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들을 했습니다. 동시에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했고요.

‘300명의 기드온 용사같은 사람들을 전 세계에서 모집을 하여 여리고 성 돌듯이 그 땅을 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도의 동역자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사의 사장으로 들어간 제가 데려간 사람들도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나진·선봉에 이어 나중에는 청진, 칠보산, 평양, 원산, 금강산, 판문점에까지 가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17개 나라에서 3백명을 모집을 했고,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땅 밟기, 기도, 예배를 드리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컴퓨터 외장 하드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북한 취재 다큐멘터리 동영상에 꽃제비 아이들이 과자를 주워 먹고 있는 것이나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을 왜 갖고 왔냐고 하면서 저를 붙잡게 되었고, 그 때부터 고생이 시작된 것이었죠. 물론 그 안에는 선교보고를 비롯, 제가 목사이며 선교사라는 자료가 다 들어있었지요.
 

붙잡혀서 주로 어디에 계셨어요?

처음 한 달간은 보위부 안가 같은 곳에서 조사를 받다가 평양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외국인들은 모두 그곳에 머무는 곳이었어요.
 

억류기간이 얼마나 되지요?

총 2년하고 5일을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보위부로 넘어갔다가 그 뒤 교화소로 갔습니다. 교화소로 넘어가니 밥하고 짠지가 전부인 항상 배고픈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세 달 동안 나가서 중노동을 하니 50파운드가 확 줄더군요. 영양실조가 오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고요. 쉬는 게 전부였지만 그나마 외국인들이 다니는 병원이라고 나중에 보니 하룻밤에 1천 유로를 받더라고요. 나중에 미화로 30만불의 빌이 나와 “나는 선교사라 돈 없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예배하는 사람이다.” 했더니 그걸 내야 풀어주겠다는 겁니다. 저는 국가 반란, 음모죄로 잡혔는데 기도를 통해서 나라의 전복을 꾀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어요. 어찌보면 우리보다 믿음이 좋은 것 같아요. 기도로 나라가 전복된다고 믿어주니까요. 우리는 기도한다고 통일이 되겠냐고 말하는데 말입니다.
 

북한에서의 억류 2년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억류 3일째 되던 날, 하루 종일 차렷 자세로 세워놓습디다. 그 자체가 고문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고, 허리도 안 아프고, 배도 고프지 않았어요. 단지 제가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 걱정에 자책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왼손이 따뜻해져요. 손을 펼쳐보니 금 가루 같은 것이 반짝 반짝하면서 온기가 왼팔로 번져가요. 영문을 몰라 서있는데 주님께서 ‘성령께서 너의 손을 붙들고 계시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일을 통해서 그 누구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돌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날 저도 처음으로 그런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면서 걱정, 근심이 다 사라지고 평안함 속에 오직 주님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웃고 있는 저를 보안 카메라로 보고 있던 그들은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고문하는 것을 멈추고 그냥 잠을 재웠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알았어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 이후에도 때마다 하나님은 저를 위로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신 일들이 많았습니다.
빼앗겼던 성경책을 돌려받았기 때문에 저한테는 그것이 큰 위로였고, ‘너는 내가 보낸 선교사’라는 말씀을 하셔서 열 여섯살 때 들었던 ‘목자’라는 말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놀랍군요?

하지만 성경책을 읽을 때는 옆에 누가 못오게 해요. 멀리 2-3미터 밖에서 덮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나갈 사람에게는 나가서 악평을 못하도록 인권을 존중한다는 제스쳐를 쓰는 것 같아요. 처음 1년에는 성경을 18독쯤 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나중에 알고보니 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기도하고 있었더군요. 미국에서는 17만 7천명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케네스 배를 빨리 데려와 달라’고 청원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석방이후에는 저 역시 북한 주민을 위한 ‘느헤미야 100만 기도 서명운동’(New Korea Foundation International)을 시작하여 매주 화요일 기도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17만 7천명의 사람들이 한 명의 선교사를 위해서 서명할 수 있었다면 2천 5백만의 북한주민을 위해서는 100만이 기도할 때, 저 땅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현재는 100개국에서 6천5백명이 기도하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도에 동참해주세요. www.newkoreafi.org에 가시면 자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고국을 떠나 살던 2세였음에도 고국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님 맡겨 주신 일을 이뤄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기도운동은 통일과 북한을 위한 기도회입니다. 우리끼리라도 기도를 먼저 시작하자니까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코로나로 잠깐의 침체기가 있었으나 다시 기도로 동참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억류에서 풀려 미국에 도착해서는 뭐라도 빨리 진행하고 싶었으나 주님은 쉬라고 하셨어요. 2016년에 간증집 ‘잊지 않았다. 나는’을 한어와 영어로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간증 집회와 말씀을 전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탈북민들, 특히 1.5세 청소년, 대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이 아이들이 느헤미야가 되어 통일 후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인재들이 되도록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작년, 재작년, 올해 대학생들을 선발하여 3주 훈련시키며 북한을 돕자는 호소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중국에 있는 탈북민들도 요청을 하여 그들을 구출하는 단체 ‘NK Relief’(nkrelief.org)를 만들었어요. 아내가 상담이 전공이라 온라인 상담으로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중국에 북한 사람들이 5천명이 모여 있는 곳도 있다고 해요. 이런 이들을 위한 온라인 상담 사역까지 하다 보니 사역이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계속 기도로 돕겠습니다. 하시는 일들이 주 안에 형통하시길 빕니다. 

느헤미야 100만기도 서명운동 /  www.nkrelief.org /  www.newkroeafi.org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한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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