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장로님은 비지니스를 신원그룹이란 대기업으로 성장시키셨는데 언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는지 얘기를 들려주세요.

돌이켜 보면 어려움도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지난 50년 동안 신원그룹을 지켜 주셔서 다들 어렵다고 하는 때에도 기업의 매출은 늘고, 수주는 더 많아지는 기적을 체험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때에는 대농으로 살았지만 아버지때 와서 마약도 하고 쫄딱 망한 집안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게 되셨지요. 그때도 명절에는 다들 떡도 하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우리 동네에서 하기는 창피하니까 다른 동네에 가서 구걸도 하여, 어머니께 얻어온 음식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차에 들리는 소리가 목포에 가면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주는 곳이 있데요. 초등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했던 저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국립감화원이라는, 사실 부랑자들을 데려다 놓는 곳이었는데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12명을 뽑아 보냈는데 6학년에 편입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저 혼자 남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쫓겨났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은 그때 담당 선생님(안병현)이 예수님을 전하면서 때리면 맞을 지라도 공부하라고 당부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북에서 피란나오신 분이셨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그분을 저에게 붙여주신 것이었어요. 그때가 제 나이 열한 살이나 열두 살 정도 되었을 거예요.

감화원에는 온갖 부랑자들이 다 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으면 아무 데나 묻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공동묘지를 다들 무서워했지만 저는 그곳을 기도처로 삼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나중에 시험을 쳤는데 제가 전라남도서 전체 1등을 하고, 목포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목포 고등학교를 거쳐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한양대, 고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쳤고, 김대중 대통령 정권에서는 공보비서로 일을 했습니다.

기업인으로 사업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30세가 다되어 처가의 스웨터 공장을 맡아 하게 되었는데 사업체가 점점 커져 갔습니다. 이왕 사업을 할 바에는 세계적인 기업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79년에는 스웨터 한 종목 가지고 금탑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저를 꼭 붙들어 주셨어요. 고생과 역경의 고비가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움직이질 않아요.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간호사가 실수하여 주사를 잘못 놓는 바람에 저는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의사도 저의 생명을 포기할 즈음에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공장위에 올라가 ‘하나님, 저를 살려 주셨군요’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살렸다’는 음성을 듣게 되었고,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새로운 각오로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의 공보비서로 일할 당시 접대며, 여러가지 일들로 믿음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때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신원 본사 건물 위 "주일은 주님과 함께" 문구
서울 마포구 신원 본사 건물 위 "주일은 주님과 함께" 문구

교회를 정말 많이 지으시고, 선교사도 많이 도우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 생명을 얻고 난 후에 “교회는 100개 이상 세우고, 선교사님 파송에도 최선을 다하고, 신학교도 세우겠습니다.”하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나의 서원에 맞추어 계획을 세워 나갔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140개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네팔을 비롯, 신학교는 지금까지 130개를 세웠습니다.

저는 나이도 많이 들었지만(82세) 공예배는 물론 새벽예배도 절대로 빠지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예배 드리며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더니 하나님은 저에게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지금은 2세들도 다 후계자로 길러서 회사는 후임들이 맡아 잘 경영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 교회를 세우기가 어렵지 않으셨어요?

베트남과 중국이 교회를 세울 때, 가장 힘이 들었습니다. 교회 세우는 것이 안된다고 하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 자체를 원천적으로 무효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언제나 암묵적으로 허락해주었습니다. 

50년의 사역 이야기를 어떻게 잠깐의 이야기로 끝낼 수 있겠어요? 감사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죠. 1년에 100명 이상의 전도를 하겠다고도 서원 했었는데 그것도 40년 이상 해오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목사님들을 배출하기 위해 세운 신학교에서는 1년에 10명씩 졸업하고 있습니다.

저의 신조는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는 겁니다. 아주 단순한 것이지요. 나이가 있어도 새벽기도회는 죽기 살기로 나가고 있어요. 죽는 날까지 나가려고요.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가능하니까요.    

앞으로 하실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과테말라와 니카라과에도 세운 교회와 공장들이 있습니다. 모두 잘 있는지 점검도 하고, 이후에는 아프리카에도 교회를 지을 계획이 있습니다. 교회를 세운 후에는 가꾸는 것이 중요해요. 신원의 교회는 월요일이면 세계 속의 곳곳에서 모든 교회들이 예배를 드린 후 일을 시작합니다.

장로님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세요?

오후에는 한두 시간 등산을 비롯해 운동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장로님을 통해 세계 복음화가 더욱 당겨지길 기도합니다.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한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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