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민과 복음의 수용성
2011년, 시리아에서 사역하던 우리 장기팀은 시리아 내전이 벌어지자 시리아 난민들과 함께 J국으로 넘어왔다. 자연스럽게 J국에서도 함께 넘어온 '고향사람들'인 시리아 사람들을 섬기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시리아에서는 그렇게 애를 써도 개종자를 얻기 어려웠는데, J국에서는 너무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분명 같은 사람들인데 말이다. 여기에 난민의 선교적 중요성이 있다.

난민이 되면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파격적으로 높아진다. 첫째, 마음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들은 중·상류층 사람들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시리아 국경을 넘을 여력도 없다. 그런데 이들이 난민이 되면서 맞이해야 했던 현실은 참혹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사람들의 시선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불안들이 마음을 가난하게 한다. 그리고 이 '가난한 마음'은 복음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준다.

둘째, 이슬람에 대한 실망이다. 믿었던 형제국가들보다 오히려 크리스천들이 더 친절하다. 관심을 가져준다. 처음에는 이슬람 NGO들도 음식과 담요를 싸들고 찾아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의 이벤트였을 뿐 사진 찍고 돌아간 이슬람 NGO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꾸준히 이들을 찾아온 사람들은 크리스천들 외에는 없었다.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것은 주변에 눈치 봐야 할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명예살인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슬람은 그 태생자체가 '공동체적'이다. 움마 공동체가 시작된 622년을 이슬람 원년인 '헤지라'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다. 개종하고 싶어도, 개종하면 생명이 위태롭다. 나만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가족 모두가 위험해진다. 이 부담이 무슬림들의 개종을 막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난민이 되면서 모두 흩어져 버렸다. 주변에 사는 요르단 또는 레바논 사람들은 난민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시리아 사람들이 빨리 자기 나라에서 나가 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난민들은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아주 높다. 보안상의 이유로 인해 실제적인 숫자가 잘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시리아 난민이 발생한 이후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적어도 만 명 단위를 훌쩍 넘어선다. 이슬람이 시작된 이후 지난 1,400년 동안 이런 기회는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이슬람 선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정말로 역사적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돌아오고 있다!

2) 난민선교의 과제
한편 복음의 수용성이 높아지는 이유의 이면을 생각해보면 난민선교의 실제적인 과제들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난민선교의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시간'이다. 복음의 수용성을 높게 해준 '가난한 마음'은 현지에서의 적응이 진행되면서 점차 사라져 간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더 흐르면 함께 정착한 난민들끼리 게토화 되기 시작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예전의 '감시의 두려움'이 부활한다. 새로운 커뮤니티가 개종하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난민선교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골든타임은 난민발생 시점부터 늦어도 1년 안쪽이다. 실제적으로는 3-6개월 안쪽이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난민사역은 이민사역으로 그 성격이 변해간다. 초기의 복음수용성이 감소되고, 장기적인 사역에 대한 프레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여전히 프리미엄이 있다. 어찌되었던 난민들은 '이슬람 국가'라는 최악의 환경은 벗어났으니 말이다. 유럽에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핍박할 국가권력이나 종교경찰은 없지 않은가! 반면 중동, 특히 - 요르단, 레바논, 그리고 터키 등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이주민이 되는 순간 이런 프리미엄도 사라진다. 그래서 시간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에 대한 논의는 '난민사역의 미래'에서 살펴보자.


고성준 목사
수원 하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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