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으로 남쪽 지방 학생들과의 작별(1914.6.20). 여름방학을 맞아 대구신학교로 떠날 신학생들과 서울에 남는 신학생들간에 이별식을 거행하고 기념 촬영

한국과 미국에 한인들의 신학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한국교회에도 퍼지면서, 성직자가 되는 것만이 거룩한 일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착각을 하고, 저마다 신학교로 몰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즉 종교개혁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좋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거룩한 일을 해야 한다면서, 그 직장을 집어치우고, 신학교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교가 많아지고, 신학생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신학의 빈곤과 왜곡으로 인해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셈이다.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하라고 불렀는데, 장사를 하라고 불렀는데, 공업을 하라고 불렀는데, 의사가 되어 병을 고치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다 버리고 신학을 하겠다고 왔으니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니고 뭐냐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는 목사와 전도인의 구별이 사라졌다. 에베소서 4:11에 나오는 사도, 예언자, 전도인, 목사와 교사의 구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도인이 하나의 별도의 법주가 되어있다. 교회는 사도성이 필요하고, 예언자 노릇도 해야 하고, 전도인의 역할도 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와 교육을 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전도는 그리스도인 모두의 책임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인은 전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목사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나 언제나 전도인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법관도 그 자리에서 전도할 수 있다. 의사도 자기 자리에서 전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목사가 되어서 전도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도인은 학식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다. 무식해도 전도는 할 수 있다. 전도는 신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물론 신학을 알고 성경을 잘 배워서 전도하면 성과가 더 클 수 있을 것이다. 전도를 위하여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도자는 반듯이 목사여야 하는가 말이다. 한국에서는 전도의 열이 있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기초 교육도 별로 받지 않았는데,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오고, 어떤 신학교는 학생에게 별로 가르치지도 않고 졸업을 시켜 목사 안수를 받게 한다. 목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양 곧 귀한 인간을 책임지고 지도하며 양육하는 사람인데, 어찌 최고의 지식과 경험과 훈련을 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3년 이상하고 많은 훈련과 경험을 쌓은 사람도 사람을 전인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나는 장신대 학장 책임을 지고 있을 때, 개학식 때마다 신입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신학교에 오신 것을 우선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신학을 알고 성경을 알기 위해서 왔다면 대 환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 목사가 될 생각으로 왔다면 재고해보십시오. 목사가 남아 돌아갑니다. 목사가 그리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달란트를 잘 살리십시오. 여러분의 전문 직장에서 전도를 하면 됩니다. 목사가 될 사람은 목사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목사들이 과잉에 과잉을 이루어 교회는 아수라장이 된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교단 책임자들과 신학교 이사들과 교수들은 현상유지 내지는 계속 확장 계획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혹은 속수무책, 이 수렁을 벗어날 길이 없다고 하면서 자포자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쩌자는 것인가? 이미 배출되고 갈 데가 없는 목사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남의 자리라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신학교들은 그냥 목사를 생산해내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하루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살아남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 나가면 머지않아 크게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신학교육의 질을 따져 봐도 이만저만 문제가 아니다. 선진 국가에서는 일반 대학의 학생과 교수의 비례가 6대 1 정도가 된다.

아무리 양보해도 예수님의 제자교육의 비례는 유지해야 한다. 즉 12 대 1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미국 장로교회 신학교들은 거의가 11 대 1 정도의 비례를 가지고 있다. 장신대의 비례는 어떤가? 창피할 정도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참된 제자교육이 이루어지는가 말이다. 목사교육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어야 한다. 신학지식을 조금 넣어서 내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그 많은 학생들이 시장바닥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100명, 200명이 한 교실에서 강의를, 아니, 강연을 듣는 교육을 받으니, 무슨 참된 학문이 되고, 인격적, 신앙적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말이다. 전국의 신학교가 장신대보다도 훨씬 열악한 신학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여파가 앞으로 어떻겠는가 말이다. 한국의 하나님 나라 건설 운동에 희망이 있겠는가 말이다.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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