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과 신학의 위치

나의 사고(思考) 방식의 변천을 다시 정리해 본다.


(1) 우선 나는 천동설적인 사고를 하면서 나의 오관으로 감지되는 것을 그대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를 살았고, 지금도 다분히 그 경지를 넘다들고 있다.


(2) 그러나 아이잭 뉴톤(Issac Newton)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 표면적이 현상 속에 원리가 있는 것을 깨닫고 만유인력의 원칙을 찾아낸 것처럼, 표면적인 것들 속에 있는 원리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단계를 거쳤다.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내가 우연히 속해 있는, 그리고 나의 주변이 전수해 준 정통주의 이론을 답습하면서 정통 보수주의의 원칙을 견지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것이 절대적인 진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와 다른 것들을 나의 표준을 가지고 정죄하는 풍조와 행위에 동참하였었다.


(3) 그러다가 내가 살던 좁을 우물을 벗어나 다른 사고의 세계를 접하면서 나의 과거를 상대화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것만이 참이 아니고 남에게도 참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단계의 나와 내가 속한 그룹의 행동을 나는 중학교 시대에 읽은 하나의 우화로써 묘사해 본다. 애꾸눈 원숭이들만이 모여 사는 산골에서는 자기들 애꾸눈이 정상인 줄 알고 살았다. 어느 날 두눈박이 정상적인 원숭이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 애꾸눈 원숭이 골짜기에 접어들었다. 애꾸눈 원숭이들이 그 두눈박이를 보자 이상하다는 듯이 그리고 우습다는 듯이 깔깔대며 놀려대고 못살게 굴었다. 하도 그러니까 두눈박이가 그럴사 해서 슬그머니 물러나가 바위에다 한 눈을 쪼아 애꾸눈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자 애꾸눈 원숭이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는 것이다. 나와 나의 그룹은 애꾸눈 원숭이들처럼 자기들이 모자라면서도 멀쩡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때로는 박해하고 출교(黜敎)하는 망동을 하였고 또 하고 있다. 이제 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는 동시에 그 유아기적 행태를 반성하게 된다.


(4) 이제 나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적인 입장, 초극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기를 원한다. 자신의 사고의 입장을 떠나고 남의 것들과 자기의 것을 다 객관적으로 같이 놓고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기를 바란다. 뉴톤은 자기 입장에서 사과의 낙하 현상을 이론화 했다. 즉 물체가 지구 중신을 향하여 수직으로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구를 떠나거나 내가 타고 있는 운동체(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를 떠나서 물건의 낙하현상을 보면 낙하현상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 복잡한 현상이 진상이다. 내가 기독교 복음을 알고 성경을 안다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어서, 나의 현재의 입장에서 내 표준에 비추어서 안다는 것이 얼마나 미약하고, 왜곡되고, 진실에서 먼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엉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5)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진리가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고, 사람이 저마다 주장하는 진리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아는 지혜가 주어지기를 하나님에 기원한다. 그리고 겸손히 진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나 자신이 이미 다 얻었다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내가 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곧 뒤의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매진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높은 곳으로 불러주시는 그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좇아갑니다.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것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빌 3:13-16. 나의 사역)


박창환목사

전 장신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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