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서 10번에 걸쳐 시리즈로 주일 설교하신 에스더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에스더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당시는 훌륭한 왕이 통치하던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보았을 때도 포악하고 권력욕이 강하며 호색한 아하수에로가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던 때로 꼭 이런 역사를 성경에 놓아야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책입니다. 그러나 또 에스더서만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책이 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어두운 시대 속에서 분명하게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치밀하게 이뤄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러한 에스더서의 특징은 요즘 세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음을 봅니다. 지금 시대는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도 분명 하나님은 강력하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에스더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간의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주권이 풀어지는 방법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럴싸한 교회 건물에 사람들을 꽉 채워 경건한 찬양을 드리고 기도의 모습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성이나 LG와 같은 바쁜 직장과 세상에서, 청와대 국회 같은 시끄러운 권력 다툼 속에서, 심지어는 전혀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실 것같은 시장 바닥 속에서도 살아 계시고, 그들 뒤에서 아주 정밀하게 역사하고 계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에스더서는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날 우리가 경험하고 누렸던 하나님을 그 날로 잊고 사는 것이 아닌 주일의 하나님이 월요일의 하나님으로 연결되어 세상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며 사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에스더의 신앙은 오늘날 혼란스럽고 대립과 갈등이 넘치는 우리 세상 속에 하만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아주 강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에스더의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에스더서에서는 사실 에스더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 중 한 명이 에스더 뒤에 있었던 모르드개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스더서의 마지막 챕터도 모르드개로 끝날 정도로 말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는데 마치 쿠키 영상처럼 모르드개를 언급하는 만큼 에스더서 기자는 모르드개를 비중 있게 다루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의 주인공은 에스더이지만 보이지 않는 비하인드 씬에서 멘토이자 코치로서 그녀를 가르쳤던 모르드개처럼 우리를 은밀히 도우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에스더는 어릴 적 포로로 끌려와 가만두면 비행 청소년이 될 수도 있는 열악한 환경에 있었지만 모르드개는 고아인 그녀를 입양합니다. 결국 그녀는 페르시아 왕후의 후보가 되고 그 쟁쟁한 사람들 중에서도 외모와 인품이 뛰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만큼 모르드개가 지혜와 말씀으로 양육을 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에스더의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좋은 믿음의 스승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에스더서는 보여줍니다. 부모의 기도, 삶 속에 스쳤던 고마운 사람들과 같은 영적인 멘토들, 또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양육하시고, 지혜와 능력으로 입혀 주시고, 결정적인 순간에 담대하게 나설 수 있도록 도우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손흥민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뛸 수 있나’ 생각하지만 그 아버지 손웅정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가 기본기만 7~8년을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축구 기본기를 비롯하여 인성 교육, 책 읽는 습관 등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이 “하늘에서 떨어진 스타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 또한 분명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녀의 신앙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착실하게 다져진 기본기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순간을 위해 평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손흥민이 한 번 터뜨리는 기가 막힌 슈팅은 그가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의 산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더가 홈런 치는 장면만 보고 놀라지만 그 이면에는 진한 기도와 눈물, 기도와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 속 많은 사람들이 강해지고 싶어하고 강해지기 위해 스펙을 쌓는 등 온갖 노력을 합니다. 정말 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성경에는 이방 제국 안에서 세워진 평신도 리더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에스더, 다니엘, 느헤미야, 요셉 등 말입니다. 아마 그들의 스펙으로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특히 요셉은 당시 가장 강력했던 이집트라는 나라에서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인데 그 사이에는 쟁쟁한 자제들이 수천, 수만 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나라도 고위직에 오르기 위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신분, 그들의 형편없는 스펙, 또 수천, 수만의 경쟁률이라는 여러 불가능한 조건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뚫고 그들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과 경쟁하려 한다면 승산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훈련 시키셨습니다. 그들을 자세히 보면 ‘역경지수’가 뛰어났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명문대를 나와도 역경지수가 없는 사람들은 작은 고난에도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나 에스더나 요셉은 어렸을 적부터 수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역경지수를 쌓아왔기 때문에 그 어떤 시련도 뚫고 나가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펙 좋은 사람들은 은근히 사람들을 평가하고 줄을 세워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좋은 스펙을 쌓게 하셔서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려가게 하셔서 위로 올라오게 하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리더십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연소 합격, 엘리트 코스 등 빠른 길, 오르막길 만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천히, 내리막길도 가게 하시고 무너져도 보게 하시고, 낮추셔서 역경지수를 키워 나가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더들을 하나님께서는 보통 순식간에 높이시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이미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기에 그 짧은 시간에 올라간 자리를 전혀 어렵지 않게 감당하는 영적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지금 당장 빛 나는 무대에 서고 싶어하지만 우리는 지금 주어진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빛나는 무대에 세우실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외국에서 공부하고 1999년도에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그때 처음 부목사로서 들어간 온누리 교회는 이미 크고 유명했습니다. 저와 같은 선임 부목사님들이 90명 가량 있었고 거의 다 장신대 출신으로서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저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그런 학연, 지연 없이 온 것이다 보니 처음에는 작은 사역들만 맡겨졌습니다. 설교 또한 1년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말에 묵묵히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사역한 지 두 달 만에 저에게 수요 예배 설교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그날은 평소와 달리 찬양팀으로 섬기던 사람들 8명과 성도분들 12명이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후에 들어보니 그날이 구정 연휴로 대부분의 성도분들이 고향에 내려가셨던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강단에 설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최선을 다해 설교했습니다. 신기한 건 그날 예배 음향실에 온누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던 하용조 목사님께서 듣고 계셨고 그 12명의 성도분들 중에는 중직을 맡고 계신 장로분들, 사역 팀장님이 앉아 계셨던 겁니다.

또 교회에 목회자들 북 클럽이 있어 자신들의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라는 책을 잘 읽고 준비해서 기업체 세미나를 하듯이 5명의 목사님 앞에서 열심히 소개를 하고 있는데 그때도 우연히 카페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장로님들과 커피를 마시며 제 이야기를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우연들이 모여 저는 지역 경영 차원에서 리더십을 가르치는 자리에 하용조 목사님 대신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리더십 강의와 함께 하나님을 함께 가르쳤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여러 기업의 리더십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교회 안보다 교회 밖에서 더 알려지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전체 온누리 리더십 훈련에 저를 주 강사로 세워 주셨고 두란노 출판사에서 제가 썼던 책인 <거인들의 발자국>을 혼신의 힘으로 밀어주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6개월만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이후 하용조 목사님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목사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제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고 하늘로 날았던 것이라고, 자신은 그 음향실과 카페에서부터 알아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최선을 다 한다면 내가 무대를 찾지 않아도 무대가 자신에게 옵니다.

목사님의 저서 “뷰티풀 광야”는 지치고 힘든 많은 사람들에게 광야는 아름답다라고 역설하셨는데 뷰티풀 광야는 어떤 곳인가요?

제가 이민 갔던 1980년도는 한국이 가난하던 때였습니다. 당시는 매년 3~4만명이 이민을 가던 때였는데 갖고 갈 수 있는 달러도 엄격하게 규제되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돈이 없던 때였습니다. 이민자들은 그곳에서 막노동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90년대 이후로 한국이 잘 살게 되면서 이민자들이 와서 집도 사고 했지만 그 당시는 정말 힘들었는데 미국에 가니 바나나도 먹고, 오렌지도 먹고, 갈비도 먹을 수 있어 행복해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 보니 교포들은 한국에서 교수하던 사람들도 미국 와서는 막노동을 해야 했고 그래서 이민교회는 지치고 화가 난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장소 였습니다. 제가 이런 어려운 삶을 살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제가 깨닫는 것은 우리는 고생하기 싫어하고 자식들에게도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 하지만 한 인간의 신앙이 강해지는 것은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도 곳곳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 인생을 살며 회당을 지었고, 모세오경도 대부분 광야에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을 나타낸 사람은 반드시 광야를 뚫고 나온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를 견뎌낸 사람이지 푸른 초장을 지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가장 뜨거운 예배를 드렸는가, 언제 가장 놀라운 기도를 드렸느냐 보면 보통 광야에서 했지, 인생이 잘 나갈 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광야 속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마냥 빨리 지나가기만를 바란다면 그건 광야를 낭비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 머무르게(stay)하지 않으시고 지나가게(pass through)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둑 기사들은 대국이 끝나면 꼭 ‘복기’(바둑, 장기, 체스 등의 대국이 끝난 뒤, 해당 대국의 내용을 검토하기 위하여 두었던 순서대로 다시 두어보는 일)를 합니다.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보는 것입니다. 진 사람의 ‘복기’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다음 대국에서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이긴 쪽은 자기 실력보다 상대가 실수해서 이긴 것은 아닌지 성실하게 복기해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래서 보면 반드시 이 복기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난해를 돌아보아 내가 왜 승리했고 실패했는지 정확히 진단해보는 것, 우리의 광야의 과정을 돌아보아 광야를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광야의 과정을 통해 약속의 땅을 받아야 약속의 땅의 풍성함에 의해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갑자기 돈이 들어오고 명예가 들어오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래서 그냥 추락해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광야를 거쳐 우리의 영혼이 단단해져야만 합니다. 이 과정이 있던 사람들은 후에 성공이 와도 그것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석탄층이라 할지라도 어떤 압력으로 누르는가에 따라서 어떤 것은 석탄 그대로이지만 어떤 것은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광야가 길면 길수록, 광야의 압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은 다이아몬드처럼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새로운교회는 건축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한국 교회가 대형 교회 건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건축이란 건 역시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면 예배당은 교회가 입는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커지면 몸에 맞는 옷을 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옷이라 한다면 실용적으로 그 교회의 특성의 맞는 예배당을 짓는 것, 그 교회가 갖고 있는 목회 비전에 따라 연구하는 교회라면 연구자에 맞는 옷, 운동하는 교회라면 활동성 좋은 옷, 학교 비전이 있는 교회라면 캠퍼스와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또 세대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 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무리하게 큰 교회를 짓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교인들이 5,000명이 되기까지 세 번이나 옮겼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교회 건축에 큰 뜻을 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몸이 무거워지다 보니 이제는 건축에 대한 마음을 주시기는 하지만 이것을 너무 무리하게 밀어 붙이기 보다는 그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아이가 입을 옷이, 차나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미국 사회는 동성애라는 정치적 이슈로 많은 재미교포 크리스찬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목사님께서 신앙의 격려와 조언을 해주세요.

근본적인 문제부터 보자면 미국교회가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버클리 대학을 나왔는데 제가 갔던 그곳은 히피문화, 동성애 문화의 원산지와 같았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저 이 문제를 젊은 이들의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40대, 50대가 되면서 미국의 엘리트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수, 오피니언 리더, 인플루언서, 연예인, 패션, 헐리우드 등 영향력 있는 곳으로 들어가 조금씩 세력을 확장해나간 것이죠.
보수 기독교는 한참 힘이 강했을 때 이러한 문화를 그저 영적인 전쟁으로 보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때 정상적인 남녀의 성 역할과 건전한 문화 등을 기독교적으로 차분히 설명하고 가르쳤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이러한 분야에 있어 다양한 지도자들이 나와 지적인 식견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이것들을 영적 전쟁의 강한 언어로 맞서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룰 때는 지혜로운 언어로 대처하는 처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현재 시점에서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판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모든 해전은 바다 한복판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바다 근교에서 싸웠다는 것입니다. 병법의 기본으로 자신이 유리한 싸움터로 싸움을 끌고 가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교회 웹사이트 Website : www.saeroun.net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정리 안진성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편집간사,  칼빈대 신학과)·촬영 강한빛 (크리스찬타임스 영상팀장, 오롯영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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