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부터 영화를 제작하셨는데 이번에 이승만 대통령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게 된 계기와 목적은?

2003년,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제작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유명감독이 아닌 제가 당시에는 더더욱 기반이라는 게 없어 듣고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서 이승만 대통령과 일을 해 보셨던 분이나 함께 생활하신 분들을 뵈면 꼭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여쭤보면서 그 인터뷰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악담, 왜곡, 거짓으로 깎아 내리는 시도가 나날이 심해져 갔고, 급기야는 남북분단의 원흉으로 몰고 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 일대기에 대한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우리나라가 어떤 역경을 뚫고 건국되었는지, 그리고 왜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강조한 역할과 업적은?

저는 이승만 대통령의 주요 업적, 기여를 해방 이후로 봅니다.
물론 해방 이전에도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셨고, 성과를 낸 부분도 있었으나 미국과 연합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엄청난 역량을 가졌던 이승만 대통령도 결코 실력발휘를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립을 못했다면 아마도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남은 여생을 학생들 교육하는데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 그 분은 그 분만이 할 수 있는 큰 일을 해 내셨습니다. 만 73세에 대통령이 되셨는데, 이는 지금도 일반인들이 은퇴할 나이입니다. 그 연세에 죽어가는 자식 살리 듯 지도상에서 지워질 뻔한 우리나라를 살려 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보다 더 큰 숙제가 어디있겠습니까? 은퇴할 나이의 노인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숙제를 푸셨던 것입니다. 이는 학벌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 나라사랑, 열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보여 집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피난 가지않고 이 곳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I will stay here"라고 하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국민배우 임동진 목사님께 맡기게 된 이유?

맡겼다기 보다는 그 분이 승낙해 주셔서 진행되었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유명 국민배우 분께 극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재연 장면에 출연해 달라는 부탁은 결례가 될 수 있어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시던 후원자 한 분이 만남을 주선해 주셨는데 대화를 나눠 보니 의외로 그 부분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 꼭 해 주시라고 적극적으로 부탁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본인 생김새가 이승만 대통령과 달라 민망하다 시면서도 해 주셨습니다. 저도 사실 그 분 생김새가 많이 다른 것은 동감합니다. 하지만 워낙 연기력이 뛰어나셔서 연기력으로 커버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꽤나 적중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위) 이승만 대통령 영화 '기적의 시작'의 한 장면. (아래) 같이 영화에 참여한 스탭진들과 함께
(사진 위) 이승만 대통령 영화 '기적의 시작'의 한 장면. (아래) 같이 영화에 참여한 스탭진들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영화 '기적의 시작'의 장면들. (아래) 같이 영화에 참여한 스탭진들 및 감독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영화 '기적의 시작'의 장면들. (아래) 같이 영화에 참여한 스탭진들 및 감독과 함께

상영 영화관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산업 분야가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면? 

상업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상업 영화관의 경우 장사가 안되면 가차 없이 상영을 안 해주는데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현상이라고 봅니다. 작은 영화에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문화계를 보면 문화계 전반에 걸쳐 좌편향 인사들이 장악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저예산 영화에 ‘독립영화’ 인정을 해 약간의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해당 영화가 거대 상업자본과 배급망을 가지고 제작된 영화인지, 저예산 독립영화인지를 판단해 인정해야 하는 것인데, 좌편향 정당이 주장하는 내용을 다루면 독립영화 인정을 받고, 그 반대인 경우는 인정을 못 받는 사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대한역사문화원 김재동 원장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제주 4·3의 진실을 다룬 작품 ‘탐라의 봄’을 만들었을 때 저는 헌법재판소에서 판결 났던 그대로 ‘제주 4·3은 1948년 5월 10일 제헌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남로당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시점으로 만들었는데, 본심에서 불인정 받고, 재심에서 또 ‘독립영화 불인정’ 판정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제주 4·3은 이승만과 군경이 일으킨 국가폭력’이다 라며 원인을 빼고, 주민들과 좌익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생긴 부작용을 사건의 정의로 규정한 내용의 작품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독립영화 인정’은 물론 제작비 지원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본 취지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판단이 영향을 준 결과가 아닌지 의심해 보게 됩니다. 예술 문화계에서 이런 관행은 공정하게 정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시는 성경구절과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은?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뜻에 맞게 생활해 전 세계의 모범, 본보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구절을 좋아하고 암송하지만, 시시각각 마주하는 어려움 속에서 인간적인 힘으로 풀어가려는 제 모습을 볼 때 부끄러움을 많이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우리나라와 세계에 꼭 필요한 작품,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치가 빛나는 영화 작품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재미교포들에게 신앙의 격려메시지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누굴 격려할 만큼 대단한 신앙인이나 유명인이 아닌데 격려 메시지를 드리려니 사실 난감합니다. 제가 처음 해외를 접했던 것은 1984년 제가 유치원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해외여행을 한 사람들도 드물 때였는데 해외에 나가보니 한국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절반은 솔로몬 제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호주에서 보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동양인을 깔보고 한국을 우습게 보는 정서가 꽤 심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국력이 얼마나 강해지고, 예전에 비해 한국인들이 대접받는 분위기가 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미국에 계신 교민 여러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럴수록 더욱 겸손하고,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을 잃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 줄 수 있도록 개개인들이 믿음생활에 힘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담·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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