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사역을 하면서 많은 분들의 임종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정서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신실하심을 느낄 수 있는 믿음의 시간이 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특별히 일생에 걸쳐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려 충성하고 이웃들을 보살피는 일에 남다른 섬김을 다한 분들의 마지막 여정에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축복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믿음의 선진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이 시간에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한 장로님의 임종 과정이다. 그분은 입지전적인 이력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한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시다가 중년을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 오셔서 미국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다시 취득하신 분이셨다. 그런 연세에 한국을 떠나 온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장로님은 교회를 열심히 섬기셨다.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 선한 사업에 열심을 다하셨고, 무엇보다 아주 온화한 성품을 갖고 계셔 주변 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지내셨고, 한인 사회를 위해서도 많은 봉사를 하셨고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많은 기여를 하셨다.

그런 성품 때문일까, 그분은 장수하셨다. 90회 생신은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함께하는 축복의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생신을 보내고 한 일년쯤 더 사셨는데 이윽고 거동이 불편해지시더니 병석에 눕게 되고 의사소통도 불가능할만큼 임종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미국 이민자들의 임종은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다. 자녀들이 타주에 살거나 한국에서 근무하는 상황이 되면 임종 예배에 다들 모이는 일이 쉽지가 않다. 멀리서 온다고 임종 시간을 늦출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온 가족들이 함께 자리하는 것은 정말 복되고 부러운 모습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자녀도 많은데다가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근무를 하거나 선교사로 혹은 목회자로 있어서 시간에 맞춰 모두 모이는 일은 정말 어려워보였다. 게다가 마지막 호흡이 언제가 될지 모를만큼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상태로 장로님은 거의 일주일 정도를 견디고 계셨고, 마침내 온 가족들이 동서남북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차로 이동하여 모두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목회자들과 많은 교회 리더분들이 함께 모여 장로님을 위한 임종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 후에 장로님은 소천을 하셨다.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살펴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른 후에도 남은 유가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장로님에겐 약간의 장애를 앓는 막내딸이 있었고 또한 다우증후군으로 태어난 손녀가 있었다. 그리고 70년이 넘는 결혼생활 끝에 홀로 남겨진 아내 권사님이 있었다. 이 두 모녀와 손녀가 한 집에 함께 남게 된 것이다. 정말 큰 걱정거리가 되는 가족이 남겨진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살기에는 모두가 연약하기 그지 없는 불안한 세 여인이 남았고 그나마 부족하긴 하지만 장로님의 막내딸이 가장 역할을 잘 맡아야 할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견디며 지냈고, 제일 먼저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손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일년 쯤 후에 구순을 넘기신 할머니 권사님이 소천하셨다. 결국 막내딸만 남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이렇게 견디는 사이에 막내딸의 병세도 훨씬 좋아져서 혼자 독립된 생활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나님께 충성하셨던 그 장로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남은 유가족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시며 한 개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후의 ‘대대 후손 사이에’ 걸쳐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신 것이다. 그 장로님의 임종과 남은 유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볼 때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며 심지어는 우리의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변함없는 언약임을 필자는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웰에이징하는 것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과의 언약을 기억하며 남은 시간을 감사하며 기도하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는 이들의 진정한 웰에이징일 것이다.
   

 

김재홍 목사 
웰에이징 미션 대표 (wellagingmission.com)
콜럼비아 신학대학원 (M.Div./Th.M./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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