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석좌교수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석좌교수

 

 최근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라는 이승만 대통령 관련 두 다큐멘터리 영화 덕분에, 건국 대통령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한층 더 반듯하게 이루어져 참으로 다행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에게 잊혀졌던 이 대통령의 수많은 업적들이 국민들 사이에서 집단기억의 형태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해박한 국제정세를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과 외교활동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기틀 마련 △공산 세력의 남침 분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농지개혁의 성공적 추진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튼튼한 국방의 확립 △교육투자를 통한 인적자원의 개발 △경제개발 계획의 초석 마련 △자력연구소 설립과 원자력 개발 체제의 확립 등이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문제는 북한의 김일성 세력과 남한의 주사파 세력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을 훼손하고 왜곡한 것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뛰어난 지도력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제대로 투영시키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작업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 첫째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기한 우파 세력 들 - 특히 우파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70대 이상 세대-이, 자신들의 무지와 잘못을 통감하고 처절히 반성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에 적극 앞장서는 것이다. 둘째는 건국 대통령께서 추진 성공한 제반 구체적 정책에 더하여, 그의 지도자로서의 세계사적·한국사적 위상과 함께 그가 무엇을 왜 고민하였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펴 이해하는 것이다. 본 칼럼은 두 번째 과제를 짚어본다. 

  우선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성군은 누구이고 어째서 성군인가? 대한민국 역대 13명의 대통령과 1명의 총리 중 누가 왜 위대한 지도자인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로 손꼽는 근거는 무엇인가? 교수 시절 수업 중 학생들에게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성군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 통상 이구동성으로 ‘세종대왕’하고는 머뭇거린다. 거기에 재촉을 하면 몇 명이 ‘정조’를 언급하고는 이내 조용해지곤 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27명의 왕이 계셨는데, 이들 중 확실한 성군은 1명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7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승만·박정희라는 두 분 성군 - 즉 세계적으로 자랑하고도 넘치는 걸출한 지도자 - 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인 근거는, 두 분이 공히 가지고 있던 투철한 애국심과 그분들이 받은 당대 최고의 교육이라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조선왕조 체제에 반항하였고, 강대국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외교와 독립운동을 했다. 박 대통령도 목숨을 걸고 혁명을 했는바, 그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단순한 지도자 박정희가 아니라 ‘혁명가 박정희’로 바라볼 때만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두 대통령은 자신의 세대 중에서는 각기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 일본국의 육군사관학교에서, 단순한 군사교육을 넘어 전인(全人)교육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1886년 개교한 배재학당에 1895년 4월 ~ 1897년 7월 기간 다닌 후, George Washington대 Harvard대 그리고 Princeton대를 거치면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5년 만에 마친 천재 중의 천재이다.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배운지 6개월 만에 학생 신분에서 교사로 탈바꿈했고, 졸업식에서 ‘한국의 독립’이란 주제로 영어 연설을 하여 극찬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20대 초반에 <협성회 회보> <매일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주필을 역임했다는 사실은 필자로서는 믿기 힘들다.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함은 그의 정신세계에 있고, 그의 정신은 그가 집필한 책에 담겨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생 5권의 책을 집필하고, 1권의 책을 번역했다. 조선왕조에 반역한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체역집(替役集, 漢詩 모음)』, 한문 영문 국한문 40여건의 글을 모은 『옥중잡기』, 그리고 『독립정신』을 집필하였다. 출옥 후 『중동전기 본말』을 번역하고 『한국교회핍박』과 『일본 내막기』를 저술하였다. 한시(漢詩)를 포함해 그분이 집필한 모든 책들은,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뇌의 결과이다. 특히 한성 감옥에서 1904년 2월~6월 불과 5달 동안에 집필한 『독립정신』은, 참으로 경이로운 책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독립정신』은 장절(章節) 구분 없이 총 52개의 주제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전반부(1-10번 글)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여기서 그는 구체적으로 조선을 ‘폭풍을 만나 침몰하는 배’에 비유하며,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하여 국민이 해야 할 일을 논한다. 중반부(11-21번 글)는 몽매한 상태에 있던 일반 백성을 계몽시키기 위해 쓴 것이다. 이 부분은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세계의 지리와 인종 그리고 문명을 소개한다. 후반부(22-51번 글)는 19세기 초반 이후 서양세력의 통상 요구와 그에 대한 조선 정부의 대응을 기술한다. 여기서는 개항 이후 조선을 둘러싸고 전개된 청나라· 일본· 러시아의 각축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독립정신』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집필된 책들 중 최고의 국민 계몽서인 동시에 경세서(經世書)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처음으로 『독립정신』을 접하고 단숨에 읽은 후, 연구실 바닥에 꿇어앉아 이 대통령의 통찰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청년 이승만의 불타는 애국심과, 큰 역경에도 굽히지 않는 투쟁의지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또한 그의 박식함에 참으로 크게 놀랐다. 도서관도 자료도 없던 그 시절에 감옥에서 430여 쪽의 책을 어떻게 집필했는지, 대다수 오늘날의 식자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자유와 개방의 의미와 중요성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고 계셨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만악(萬惡)은 자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한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무지에서 야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120년도 전에, 이 대통령은 ‘자유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한 자유는 두 가자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는 요소 - 즉 신분제, 관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마음, 사대주의 등과 같이 구래의 나쁜 전통이나 관습 -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하나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는’ 자주·독립 정신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시민들도,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바에 따라 살 때 당사자나 국가가 얻는 혜택이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도자들만 무지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초·중·고·대 모든 교육 과정에서 ‘자유’를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아, 대다수 국민들이 자유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선이 문명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개방의 필요성을 세 가지 관점에서 강조했다. 첫째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햇빛이 사방을 모두 비치고야 마는 것 같이, 서양에서 일어나서 들어오는 새로운 문명을 우리 홀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서양의 앞선 지식과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누리는 영광과 번영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더라도”, 조선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서양의 앞선 지식과 기술을 포함한 새로운 문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교역 당사자 모두를 이롭게 하는 교역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들은 이웃의 도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웃이 많을수록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은 좋아지고 많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독립정신』의 <후록>에는 ‘효험이 있는’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과 25개 방책이 제시되어 있다. 6대 강령은 ①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②새로운 문물과 법이  집안과 나라의 근본이다. ③ 외교를 잘해야 한다. ④국권(주권)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⑤도덕적 의무(의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⑥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등이다. 이것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젊었을 때인 개화기는 물론, 당신이 나라를 건국할 당시에도 중요한 실천 강령이었고, 21세기 오늘날에도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교본이라는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건국되고 국난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지켜진 것은, 전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덕분이다. 80년대 민주화 세력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건국 과정과 공산 세력과의 전쟁의 와중에서, 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분들의 노력이 먼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기초로 해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자체가, 우리의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큰 민주화 작업이 아닌가? 인류 역사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정점(頂點)에 달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한 위업이 없었다면, 과연 1980년대 민주화가 과연 가능하였겠는가? 정부 수립 후 3년도 안된 시점에서 공산세력이 무력 도발을 했을 때, 이를 바로 격퇴시킨 그 고군분투가 어쩌면 건국이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두 번째 초석이 아닌가? 이 두 업적과 비교해 볼 때, 요란스러운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과정에서 세 번째의 작은 방점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할 때면 필자는 언제나 학문적·과학적 근거를 넘어서는 확신에 빠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특별히 선택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이승만 대통령도 없고 오늘의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 말기 삶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고 문명이 미개(未開)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은 우리 민족을 미개 상태에서 문명으로 개조했다. 빈곤과 미개에 찌들던 우리를 풍요와 문명 속에 삶을 영위하도록 만든 것은, 전적으로 선교사들 덕분이다. 이 땅에 선교사들이 보내진 것은 기적 중의 기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 덕인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1884년에 입국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을 시작으로 해방까지는 1529명(그중 여성 선교사 1114명), 100주년이 되는 1984년까지는 도합 2956명의 선교사들이 내한했다. 통상 우리는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근대적 학교를 세우고, 서양 의술이 도입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등의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천지개벽한 것처럼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선교사들은 인간과 신을 보는 관점, 세계관, 직업관, 남녀평등, 자유 개념 등 상부구조는 물론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하부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한국인들에게 선물했다. 기적에 의해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기적을 일구어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개인적 성장과정,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 그리고 건국 후 국가를 이끌고 운영하는 기나긴 여정에서 그를 교육시켜 반듯한 지도자로 만든 배경에는 기독교와 선교사의 기도와 노력들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옥중에서 성령체험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삶과 사상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로 삼았다. 그리고 성령 체험을 통해 거듭났기에, 옥중에서 아무런 자료도 없이 『독립정신』을 집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교사들이 만들어 낸 기적 속에 우뚝 솟아난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지도자 이승만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쌓았고, 그 대한민국이 세계 15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이 틀림이 없다고 확신한다. 

 

최광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석좌교수

전, 보건복지부 장관

(아시아투데이 2024. 3. 27;  3.2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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